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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 없으면 발전 없어, 그래서 사람을 평생 쓴다”

중앙선데이 2010.05.23 03:41 167호 8면 지면보기
남이섬 강우현 사장과의 대화는 늘 즐겁다. 표정도 풍부하지만 손짓도 화려하다. 무엇보다 그는 웃을 때 어린아이가 된다. 그가 서울 인사동 남이섬 서울사무소에서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손민호 기자
남이섬은 신화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 근교의 그렇고 그런 유원지였다. 성인 카바레가 영업을 하고 온갖 술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늘 남이섬은 한류 관광 1번지이자 전국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힌다. 혹자는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 덕분이라고 깎아내리지만, 드라마 촬영지로 떴다가 슬그머니 잊힌 허다한 명소를 생각하면 남이섬은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다. ‘겨울연가’가 방영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하루에 100명이 넘는 일본인이 남이섬에 들어온다. 지난해 남이섬 입장객 수는 약 200만 명. 이 중에서 외국인은 25만 명이 넘는다.

종신고용제 2년째 운용, 강우현 남이섬 대표

남이섬은 신화 이전에 기업이다. 2000년 회사 등록을 마쳤다. 회사이니 최고경영자(CEO)도 있다. 강우현(57). 2001년 9월부터 ㈜남이섬 대표이사로 기재된 이름이자 허술한 유원지였던 남이섬을 한류 관광의 진원지로 개조한 주인공이다.

올해로 취임 10년을 맞는 강우현 사장을 만났다. 그는 서울 인사동에 있는 남이섬 서울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얼굴, 구두 위에 쌓인 흙먼지에서 유난히 부지런 떠는 CEO의 면모가 엿보였다. 예의 속사포 같은 말투 그대로였고, 대화 도중 짓궂은 표정 짓는 버릇도 여전했다.

‘나미나라’가 있는 남이섬 전경. [중앙포토]
-여전히 바쁘시지요.
“더 바빠. 아주 죽겠어요. 요 몇 달은 공무원 때문에 더 바빠.”

-공무원요?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와달라는 데가 하도 많아서 최근엔 작전을 바꿨지. 남이섬에 오면 강연해 주겠다고. 그랬더니 정말 오더라고. 그 양반들 강연 끝나고 돌아가면 나중에 가족하고 다시 올 거 아니야. 이것도 다 장사 수완인 게지.”
강 사장이 갑자기 비서를 불렀다. 그러더니 지난 두 달 스케줄을 출력해 오라고 시켰다. 4월과 5월 모두 강연 일정이 16개씩 잡혀 있었다. 절반이 기업 CEO가 대상이었고, 나머지 절반이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대상이었다.

종신직원 80세 이후엔 죽을 때까지 80만원
-공무원 싫어하잖아요.
“내가 언제 사람이 싫다고 했나. 공무원이 일하는 방식을 싫었던 거지. 고정관념에 갇혀서 상상력 없이 일하는 꼴을 못 봐주겠다는 거였지.”
남이섬 안에 ‘정관루’란 이름의 호텔이 있다. 옛 여관을 고쳐 호텔로 개장했는데, 무궁화 3개는 받을 수 있겠다 싶어 허가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춘천시청은 22개월이나 끌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강 사장, 무궁화를 포기하고 호텔 정문에 별 6개를 그려 넣었다. 한국에선 호텔 등급을 무궁화로 매기지만 외국에선 별을 그려넣는 걸 떠올린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6성 호텔의 호사를 누려서 좋고, 국내법상 별은 디자인으로 취급돼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엔 공무원도 예전처럼 허투루 못 대하지요.
“태도가 싹 바뀌었지. 요즘엔 김문수 경기지사가 더 찾는 형편이니까. 말도 마. 옛날엔 시청 계장도 안 만나줬어요. 내가 왜 나미나라 공화국을 선포하고 독립을 했는데. 이것저것 규제가 좀 많았어야지. 남이섬엔 대만 국기가 다른 나라 국기와 나란히 게양돼 있어요. 우리나라는 중국하고만 수교를 맺고 있어서 다른 데에선 대만 국기를 걸 수 없어요. 하지만, 남이섬에선 아니지. 명색이 독립국이니까 전 세계 국기가 휘날리는 건 당연한 풍경이지. 대만 관광객이 남이섬에서 자기네 국기 보고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아요? 남이섬이 특별한 건 남이섬을 찾는 개개인에게 특별한 기억을 안겨주기 때문이에요.”

남이섬은 2006년 3월 1일 ‘나미나라 공화국’을 선포했다. 국가(國歌)도 지었고, 자체 문자도 만들었다. ‘무법천지법’이라 불리는 헌법도 있다. 여권·비자·화폐도 유통된다(정확히 말하면 기념품으로 판매된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기발한 마케팅 수단쯤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관할 부처의 간섭과 규제를 비꼬는 모종의 반항이었다.

-지난해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을 맡은 것도 김 지사의 청이 있었다지요.
“지난해 7월 23일 이사장이 돼서 사무실에 갔는데, 650평 건물에 달랑 60명이 일하고 있는 거야. 2000년인가 도자 비엔날레 연 다음엔 마땅히 일도 없는데 말이야. 당장 이천시장에게 노는 건물 있으면 빌려 달라고 했지. 140평짜리가 하나 있더라고. 그래서 그리로 사무실을 옮겼어요. 650평짜리는 미술관으로 뜯어고치고.”

-도자재단 사람들, 신임 이사장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려면 애 좀 먹겠네요. 그래서 도자재단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내 임기에 100억원 정도 쓸 수가 있겠더라고. 그 돈으로 몽땅 도자기를 살 생각이야. 도자기를 사면 도자 공예 하는 사람은 일단 좋아하겠지. 그럼 도자기는 어떻게 할 거냐. 이천에 설봉산이라고 있거든. 거기 아래에 잔뜩 늘어놓을 거야. 어떤 건 일렬로 세우고, 어떤 건 반쯤 파묻고, 어떤 건 하늘에 매달고, 어떤 건 깨서 조각조각 붙이고. 그러면 거대한 도자기 공원이 되는 거야. 이름도 지어놨어요. 세라피아(Serapia). 세라믹 테마파크가 탄생하는 거지.”

강우현의 이른바 재활용 경영은 환경단체에서도 본보기로 삼는다. 대표적인 예가 낙엽이다. 늦가을 남이섬 숲을 걸으면 켜켜이 쌓인 낙엽에 발목까지 빠지기 일쑤다. 하나 늦가을 남이섬 낙엽의 대부분은 남이섬이 원산지가 아니다. 서울 송파구의 가로수 낙엽이 해마다 남이섬으로 공수된다.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낙엽을 송파구민 강 사장이 인수한 것이다. 이 낙엽은 봄이 오기 전 새 역할을 맡는다. 섬 곳곳에서 낙엽을 모아놓고 불을 놓는다. 그러면 섬은 낙엽 타는 냄새로 그윽하고, 모락모락 연기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관광 비수기라는 눈 내리기 전과 꽃 피기 전, 남이섬은 낙엽으로 손님을 끌어모은다.

최근엔 서울 인사동의 보도블록과 조각품을 남이섬으로 옮기기로 종로구청과 얘기를 끝냈다. 인사동 거리 정비사업 소식을 전해들은 강 사장이 쓰레기 수거를 먼저 제안한 것이다. 강 사장이 한마디 얹었다. “왜 정비사업만 하면 죄다 버리는지 모르겠어. 나만 고맙지, 뭐.”

-도대체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사람들은 내가 책을 많이 읽은 줄 알아요. 하지만, 아니거든. 나 상고 출신인 거 알지? 공부도 지지리 못했어요. 그래서 자꾸 생각하고 상상을 하게 된 거야. 배운 게 없으니 생각이라도 해야 일을 할 수 있잖아. 배운 게 많으면 생각이 틀에 박혀요. 배운 걸 넘어서지 못하거든. 책에서 교양을 쌓은 것 중요하지. 그렇지만 세상은
‘교양스럽게’ 돌아가지 않아요.”

고교생 강우현의 졸업성적은 전교생 162명 중에서 157등이었다. 대학에서도 교양종합시험에 탈락해 재시험을 보고야 겨우 졸업자격을 얻었다.

-책 안 읽고 공부 못한 게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럼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네. 나는 현장을 떠나지 않아요. 사무실에 앉아서 회의를 하면 현장을 비우게 되잖아. 그래서 난 현장에서 일하며 회의를 해. 아이디어는 늘 현장에서 나오는 거야.”

그는 정말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여태 그를 여섯 번 만났지만 오붓이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선 그와 함께 섬을 몇 바퀴 돌거나 그의 서명을 기다리는 서류 수십 장과 경쟁을 벌여야 했다. 남이섬에서 그는 손수 못질을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손님을 맞는다.

-남이섬에 오신 지 벌써 10년이네요. 아직도 바꿀 게 남아 있습니까.
“앞으로 10년은, 지난 10년을 버리기 위한 시간이 될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그럴 듯하지? 맞는 말이야. 내가 언젠가 얘기했지? 사람들은 성공만 기억한다고. 그러나 난 실패만 해왔다고. 한 번에 된 건 하나도 없었다고. 잘 안 되면 이렇게 해보고 또 안 되면 저렇게 해보고, 그렇게 하다 나온 결과를 보고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더라고. 직원들에게 실패를 계속 각인시켜야 해. 직원들은 남이섬이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을 못하거든. 그러나 난 늘 실패를 생각해야 해. 왜냐. 책임을 져야 하거
든.”

규제 싫어 ‘나미나라 공화국’ 선포
-직원들 반발은 없나요? 노조 결성은 여전히 반대이지요.
“노조 만들면 직원들이 더 손해지. 법대로만 하면 되잖아. 내가 왜 사람을 평생 쓰는데. 자기 것이란 생각, 주인의식이 없으면 발전이 없거든. 직원들 자기계발 하라고 공부시키는 회사 많잖아. 다 바보짓 하는 거야. 회사에서 쫓겨나면 먹고살 것 공부하는 게 자기계발 아니야?”

남이섬은 2년 전 종신고용 제도를 도입했다. 종신직원이 되면 80세까지 일할 수 있고, 80세가 넘어도 죽을 때까지 건강보험 혜택과 매달 80만원씩 받을 수 있다. 현재 남이섬 직원 130여 명 중 6명이 종신직원이다. 남이섬 여객선 선장, 직원식당 주방 아줌마 등이다.

-시설을 확장할 계획은 없습니까. 숙박시설이 부족해 보이는데.
“아니, 늘릴 생각 없어요. 모든 사람이 남이섬에서 잘 필요는 없잖아. 어렵게 방을 구해서 하룻밤 묵으면 만족도가 높아지잖아. 사람들이 왜 히말라야에 간다고 생각해요. 편안하고 안락해서인가. 아니잖아. 사람들은 불편해지고 싶어서 가는 거야. 특별한 경험을 쌓고 싶어서 그 멀고 험한 데를 가는 거라고.”

올가을 남이섬에 새 시설이 들어선다. 이름하여 ‘짚 와이어(Zip Wire).’ 남이섬 선착장과 가평 선착장을 잇는 거대한 밧줄로, 2003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꿈이라며 털어놨던 그 시설이다.

“배만 타고 들어오면 심심하겠지. 그래서 생각한 게 있어. 밧줄을 타고 허공을 날아서 들어오는 거야. 어때?”

만약에 다른 CEO였다면 다리 놓을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입장할 수 있겠다며 신이 나서 계산기를 두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엉뚱한 CEO는 애초부터 하늘을 날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이내 현실이 될 참이다.




강우현
1953년 충북 단양 출생.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그래픽디자이너다. 칸 영화제 포스터를 만들었고, 디자인 부문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그 시절 글자의 좌우를 바꿔 쓴 필체로 유명해졌다. 좋은 아버지 모임을 이끌기도 했고, 동화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2001년 남이섬에 입사한 첫해 월급이 100원이었다. 지난해 펴낸 『강우현의 상상망치』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왜 나쁜 뜻으로만 쓰여야 하나? 어떻게 침대에서 한 가지 생각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 동상일지라도 이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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