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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조원 번 집념과 상상력

중앙선데이 2010.05.23 03:22 167호 35면 지면보기
계절의 색깔이 더욱 뚜렷해지자 주말뉴스 끄트머리의 ‘카메라 영상’ 코너엔 봄을 즐기는 행락객들의 모습이 자주 비친다. 그중에서도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이 나오면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고 있던 나의 어깨 근육이 절로 움찔해진다. 그러면서 ‘나도 한번 타 봐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신날 것 같으니까. 세계적인 놀이공원을 만든 월트디즈니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객이 피곤해질 수는 있어도, 결코 따분해져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반영한 월트디즈니 공원의 핵심가치 즉, 콘텐트는 한마디로 ‘WOW!’(와우!)다. 신남이다. 놀이공원의 콘텐트가 놀이기구가 아닌 것처럼, 나이키의 콘텐트도 에어 기능이 아니라 승리라는 메시지의 전달이다. 스타벅스는 문화를, 항공사는 새로운 세상의 체험을 팔고자 한다. 콘텐트는 이제 더 이상 정보나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를 움직이는 그만의 핵심가치가 콘텐트인 것이다. 그렇다면 콘텐트는 제품이나 산업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2007년 문화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국내의 이야기산업 종사자는 3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야기꾼의 숫자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해리포터 이야기로 지난 10년간 308조원의 수익을 올린, 현대판 ‘세헤라자데’ 조앤 롤링의 콘텐트는 무엇일까. 세계 초특급 이야기꾼 조앤 롤링의 콘텐트는 뛰어난 상상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이야기가 더 있다. 그는 포르투갈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을 때 마법사 이야기를 완성했다. 작가도 아닌 그의 글을 받아주는 출판사는 없었다. 수십 군데 출판사 문을 두드려 겨우 원고를 팔 수 있었다. 작품 완성 4년여 만이다. 여기서 그가 가진 또 하나의 콘텐트가 발견된다. 바로 집념이다. 상상력과 집념이 그의 콘텐트 구성요소다.

얼마 전 25현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의 연주를 들었다. 열두 줄 가야금과는 가락이 달랐다. 마치 클래식 기타와 가야금의 합주를 듣는 듯했다. 25현 가야금으로 싱어송 라이터가 된 이유를 물었다. ‘기존 가야금으로는 쉽지 않았던 대중과의 소통을 찾고자 했던 것’이라 한다. 국악에 무관심한 요즘 젊은 층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정씨의 콘텐트는 연주능력 이상의 탐구능력이다.

세계 최대의 건축 대전인 베니스 비엔날레의 최연소 한국 대표가 된 건축가 권문성의 작업을 보면 세상의 유혹에서 자신의 질서를 지키는 의연함이 보인다. 세상이 주문하는 유행과 화려함에 대한 소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고단한 길을 헤쳐 오자 마침내 세상이 그의 손을 들어 준 결과다. 그의 콘텐트는 자신의 내일을 믿는 겸손한 투쟁이다.

개인 콘텐트의 힘은 경쟁력보다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효능감에 더 닿아 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란 자신의 능력과 효율성에 대한 자신감을 말한다. 따라서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 결과 보다 나은 성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과는 타인을 끌어안는 성과다. 콘텐트의 힘이 세속의 경쟁력과 다른 해석이 필요한 이유다.

내 콘텐트를 찾아 그것을 키우며 나답게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행복하게 살려면 자신의 콘텐트를 점검해 보라. 처음 시도는 어렵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받지만, 보상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돌기 시작할 것이다. 어디 시점에선 가속도도 붙는 법이다. 그것을 즐겨보라.

단순한 스펙 채우기는 취업을 위한 진정한 콘텐트가 아니다. 노련한 인사담당자들은 스펙 너머를 읽고 있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눈 밝은 유권자들은 후보의 콘텐트를 보고 있다. 그것은 공약 너머의 진정성과 실행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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