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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10% 줄이면 연비 최대 8% 좋아진다

중앙선데이 2010.05.23 02:52 167호 28면 지면보기
다양한 소재를 조합해 무게를 줄인 포르셰 파나메라의 차체.
자동차 업계에 다이어트 열풍이 뜨겁다. 가벼울수록 연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연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엔진과 변속기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둘째로 각종 저항을 줄여야 한다. 마지막은 무게인데 위의 두 조건에도 영향을 끼친다. 엔진 부품이 가벼울수록 효율이 높고, 차체 무게를 덜어 낸 만큼 저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동차 다이어트 열풍

자동차 무게를 10% 줄이면 연비는 3~8%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비가 좋으면 이산화탄소 배출도 적다. 같은 엔진으로 더 나은 성능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안전 및 환경 규제가 나날이 엄격해지면서 자동차의 장비는 착실히 늘어만 간다. 이렇듯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 업계는 경량화 기술 연구개발에 엄청난 비용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좀처럼 눈치채기 어렵다. 기존의 무게를 덜어 낸 만큼 새로운 장비를 채워 넣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동차의 무게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획기적인 기술로 화끈하게 살을 빼지 않는 한 자동차 업체가 무게를 강조하는 경우는 드물다. 같은 이유로 소비자 또한 무게를 별로 의식하지 않게 됐다.

현재 판매 중인 자동차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현대차와 기아차를 자동변속기 기준으로 살펴봤다. 기아 모닝 878㎏, 현대 베르나 1.6 VVT 1093㎏, 기아 포르테 1.6 1187㎏, 현대 쏘나타 2.0 VVT 1410㎏, 기아 K7 3.5 1620㎏, 현대 에쿠스 V6 3.8 1875㎏이다. 수입차는 동급의 국산 차보다 조금 더 무거운 편이다. 풀 옵션인 경우가 많아서다.

무게만으로 서로의 우열을 가늠할 수는 없다. 동급이라고 한들 크기와 편의·안전장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요긴한 수치가 마력당 무게다. 계산은 간단하다. 차의 무게(㎏)를 엔진의 출력(마력)으로 나누면 된다. 그러면 엔진이 내는 1마력이 짊어진 무게를 알 수 있다. 무게와 출력은 각 업체 홈페이지나 자동차등록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와 현대 아반떼, 르노삼성 SM3 등 준중형차 세 대를 비교했다. 형평성을 위해 가솔린 1.6 엔진과 자동변속기를 얹은 모델의 제원만 뽑았다. 현대 아반떼는 124마력으로 가장 출력이 높았다.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는 1305㎏으로 제일 무거웠다. 르노삼성 SM3은 동급 최대의 크기를 뽐냈다. 서로 한 가지씩 최고의 타이틀을 쥔 셈이다.

이번엔 마력당 무게를 따져 봤다. 현대 아반떼가 9.6㎏으로 가장 낮았다. 그 뒤를 11.1㎏의 르노삼성 SM3가 이었다. 마지막은 11.4㎏의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였다. 이제 공인 연비를 살펴봤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마력당 무게가 낮을수록 공인 연비는 높았다. 아반떼가 15.2㎞/L로 제일 높았다. SM3는 15㎞/L, 라세티 프리미어는 13㎞/L였다.

마력당 무게가 연비의 우열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폴크스바겐 CC의 경우 디젤 엔진의 2.0 TDI는 8.77㎏으로 가솔린 엔진을 얹은 2.0 TSI의 7.65㎏보다 무겁다. 그런데 연비는 2.0 TDI가 16.2㎞/L로 2.0 TSI의 10.6㎞/L보다 높다. 가솔린보다 디젤 엔진이 열효율은 높되 더 무거운 탓이다.

라이벌보다 무게가 획기적으로 가벼운 자동차도 종종 눈에 띈다. 국내 데뷔를 앞두고 지난 10일 사전 공개된 재규어의 신형 XJ가 좋은 예다. V6 2.7L 디젤 엔진을 얹은 모델의 무게가 1796㎏이다. 반면 V6 3.0L 디젤 엔진을 얹은 메르세데스-벤츠 S 350 CDI의 무게는 2065㎏. 차체 크기나 배기량의 차이를 감안해도 재규어 XJ 쪽이 확실히 가볍다.

비슷한 배기량의 V8 엔진을 얹은 아우디와 BMW의 무게 비교 또한 흥미롭다. 아우디 A8L 4.2 FSI 콰트로의 무게는 2020㎏. 배기량이 약간 더 높은 BMW 750Li는 2100㎏이다. 그런데 BMW 750Li가 뒷바퀴 굴림 방식인 반면 아우디 A8은 네 바퀴 굴림 시스템까지 갖췄다. 따라서 아우디 A8의 무게가 한결 가볍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규어 XJ와 아우디 A8의 무게가 경쟁 모델과 확연히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경량 소재인 알루미늄에 있다. 알루미늄은 강철보다 가볍다. 따라서 항공기와 경주용 차에선 널리 쓰여 왔다. 그러나 소재의 특성상 값이 비싸고 강성이 떨어지며 제작 또한 까다로운 편이다. 따라서 양산차에서는 힘을 덜 받는 부위에 제한적으로 사용해 왔다.

1994년 선보인 아우디 A8이 이런 편견을 깼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ASF)’으로 뼈대를 완성했다. 나아가 차체의 껍데기마저 알루미늄으로 씌웠다. 한마디로 자석이 붙지 않는 차였다. 그러나 워낙 앞선 컨셉트여서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변 여건도 지금처럼 절박하진 않았다. 2003년엔 재규어 XJ가 알루미늄 차체를 도입했다.

현재 시점에서 완전 알루미늄 차체가 장점과 수익의 균형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상징적 기술의 성격이 짙다. 아우디와 재규어의 알루미늄 모델은 많이 팔려야 각각 몇만 대 수준. 한 해 몇십만 대 이상 팔리는 볼륨 모델에 욕심껏 알루미늄 차체를 썼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게 하이브리드 차체다.

2003년 BMW가 선보인 5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엔진을 얹은 차의 앞머리를 알루미늄으로 만들면서 무게를 75㎏ 줄이는 한편 앞뒤 무게 배분도 이상적으로 맞췄다. 하이브리드 차체는 스틸과 알루미늄 두 가지 금속을 어우러지게 했다는 의미다. 두 금속은 볼트와 리벳, 접착제로 이어 붙였다. 이제 알루미늄 보닛이나 도어는 보편화된 경량화 기술이 됐다.

무게를 단 1g이라도 줄이기 위한 자동차 업계의 연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의 경량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까닭이다. 소비자 역시 자동차를 고를 때 디자인과 출력, 연비뿐 아니라 무게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수치 뒤에 감춰진 실제 연비와 주행 성능, 나아가 해당 메이커의 기술력까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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