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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 갇혀 디지털 혁명에 실패하다

중앙선데이 2010.05.23 02:50 167호 28면 지면보기
기업의 판도 변화는 기술과 시장의 변곡점에서 일어난다. 소니는 1950년대 초반 전자제품의 기반 기술이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이전하는 변곡점에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워크맨과 콤팩트 디스크(CD)로 이어지는 혁신을 주도하면서 아날로그 시대에 세계 음향가전 시장의 절대 지존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소니의 성공신화는 디지털 혁명의 풍랑을 만나면서 좌초했다. 하드웨어의 시장 지배력을 소프트웨어 분야로 확장-결합시키려는 전략 방향은 타당했지만 하드-소프트 융합시대의 주연 자리를 애플에 내주고 조연으로 전락했다. 소니의 실패는 20세기 아날로그 사고방식의 연장선에서 21세기 디지털 혁명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⑦ 소니 MD

소니가 50년대에 싸구려 소형 라디오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소니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소니는 불과 5년 만에 미국의 트랜지스터 소형 라디오 시장을 평정하고 이어 60년대엔 독자 개발한 브라운관을 내세워 컬러TV 시장까지 석권했다. 80년대 워크맨 신화를 만들었고, 83년 필립스와 공동 개발한 CD는 기존의 LP(레코드)판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며 음향 매체의 표준으로 올라섰다. 80년대 소니는 혁신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면서 음향-영상 분야 하드웨어에서 세계 1위를 굳혔다. 소니는 이후 ‘하드와 소프트를 결합해서 승부하자’는 전략을 내세웠다. 88년 CBS음반사를 매입하였고 89년 컬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하면서 가전회사가 아니라 글로벌 미디어-디바이스 기업으로 면모를 갖췄다.

91년 소니는 미니 디스크(MD) 포맷을 발표하며 차세대 미디어 시장의 지배력 확보에 나섰다. MD는 당시 시장을 주도하던 CD를 압도하는 장점이 있었다. 우선 MD는 크기가 CD의 절반 이하였다. CD 자체의 크기 때문에 휴대용 CD 플레이어의 소형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MD는 워크맨의 절반 크기로 휴대용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었다.

결정적 우위는 녹음 기능이 있다는 점이었다. CD 수준의 높은 음질에 카세트의 녹음 기능이 결합되고 크기도 작은 MD는 차세대 미디어로서 손색이 없었다. MD는 제조자에게도 매력적이었다. CD 플레이어와 호환성은 없었지만 기존의 CD 제조 공장에서도 낮은 원가로 쉽게 생산할 수 있었다. 공(空) MD 1개의 가격은 3달러에 불과했다. MD플레이어를 시장에 안착시키는 필수조건인 MD 음원 확보에서도 소니의 역량은 세계 최고였다. 세계 5대 음반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소니는 MD플레이어 출시와 동시에 MD 음반을 발매할 수 있었다. MD의 출시로 CD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하고 소니의 MD플레이어가 디지털 음악시대의 워크맨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했다.

90년대 세계 음향-영상산업의 지존이었던 소니의 브랜드 파워, 마케팅 능력에 MD의 기술적 우위까지 결합된 MD의 앞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시장에선 다른 일이 일어났다. 출시 후 10년이 지난 2000년까지 MD의 세계 판매량은 1400만 대에 그쳤다. 이 중 800만 대가 일본에서 팔렸다.

MD는 근본적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제품 개념인 ‘스탠드 얼론(Stand Alone)’ 기기였다. 휴대하기 편하고 녹음도 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고성능 컴퓨터의 보급과 광대역 인터넷의 확산은 음악산업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CD에서 디지털 신호로 변환된 음악 신호는 MP3 포맷이라는 파일 형태로 표준화되면서 음악을 스테레오 앰프로 듣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신세대는 컴퓨터로 듣기 시작했다. 광대역 인터넷의 보급으로 음악 파일의 컴퓨터 간 교환이 가능해지고 휴대용 MP3플레이어가 출시됐다. 음악의 주요 소비층인 신세대에게 음악 듣기는 파일 재생이지 더 이상 음향 기기의 작동이 아니었다. MP3플레이어 시장은 급성장해고 음악시장은 디지털 음악의 네트워크 교환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아 급격히 재편됐다.

애플은 바로 이 시점에 등장했다. 2001년 10월 애플은 소형 하드디스크를 적용한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출시해 애플 특유의 산뜻한 디자인으로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하드웨어 시장 진입에 성공한 애플은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당시 CD 형태로 음반가게를 통해 유통되었던 음반산업은 냅스터와 같은 파일 교환 웹사이트를 통한 불법 MP3 파일 교환이 시작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디지털 음악의 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계속되면서 합법적 유통의 필요성은 커졌지만 실제 사업모델로 연결시켜 성공하는 회사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2003년 4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라는 온라인 음악유통 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한 곡당 99센트, 한 번 내려받으면 5대의 PC에서 애플 제품인 아이팟에서는 무한정 재생되었다. 애플은 음반사에 저작권료 지불을 보장했다. 아이튠스는 서비스 시작 후 15개월 만인 2004년 7월 13일에 1억 곡, 2010년 2월까지 100억 곡이 판매되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아이튠스가 뜨면서 아이팟 판매가 급증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아이팟은 2010년 3월 누적판매량 2억5000만 대를 기록했다. 애플 아이팟-아이튠스의 성공과 반비례해서 소니의 MD는 시장에서 퇴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소니의 야심작 MD의 실패는 미래를 내다보는 근본적 혁신이 아니라 과거 성공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제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50년대 트랜지스터라는 첨단기술을 적용한 혁신제품 개발로 등장한 소니였지만 시야가 아날로그 시대에 머무르는 바람에 디지털 혁명의 본질을 놓쳤다. 그 결과 세계음악 산업의 지존 자리를 애플에 내주고 말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서 미래형 사업구조를 만들겠다던 소니의 기본 관점은 타당했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은 소니가 생각했던 구시대식이 아니라 애플의 네트워크 대응 MP3플레이어와 온라인 음악 유통을 결합하는 데서 생겨났다. 애플의 하드웨어 제품 라인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애플 매킨토시로 확장되면서 소프트웨어 서비스 라인인 아이튠스·앱스토어와의 연계에서 발생하는 시장 장악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소니의 실패 경험은 타산지석이다. 아무리 강력한 시장지배자라도 기술-시장 변화의 변곡점에 대응할 수 있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실패하면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산업은 디지털 혁명이라는 변곡점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해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과거 성공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과거를 부정하는 미래형 혁신만이 21세기 기업의 살 길이란 게 소니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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