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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태 풀려면 채권 금융회사들도 고통 분담해야”

중앙선데이 2010.05.23 02:48 167호 30면 지면보기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 교수
유럽 리더들과 IMF는 서툴렀다. 금융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렇다고 모든 길이 막힌 것은 아니다. 마지막 길이 하나 열려 있다. 이 기회를 살려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글로벌 이코노믹 뷰

그 길이 무엇일까? 그리스의 채무 구조조정(워크아웃)이다. 그리스가 짊어지고 있는 부채의 원금이나 금리를 깎아주고 만기를 연장하는 일이다. 이는 비판을 부를 만한 말이다. 하지만 유럽 리더들과 IMF가 구제안을 마련할 때 왜 채무 구조조정안을 마련하지 않았는지를 비판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시장 참여자들은 긴축정책 등으로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착각과 환상만이 채권액을 유로화로 100%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채권 금융회사들은 IMF 추정을 받아들여 그리스가 국내총생산(GDP)의 150% 수준의 부채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실제로 빚이 그 정도까지 불어나면 그리스 정부는 GDP 10%를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지출해야 한다. 정부의 긴축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와중에 그 정도를 채권자들에게 넘겨주는 일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일부 전문가는 유럽의 은행들과 금융시장의 체력이 되살아날 때까지 그리스 채무 구조조정을 최대한 늦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좋은 날이 언제 올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 채무 구조조정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그리스나 IMF가 워크아웃 계획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IMF가 호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채무를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닥치면 IMF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태 해결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채권 금융회사들은 채권 1달러 가운데 절반인 50센트만을 받는 조건으로 기존 그리스 채권을 넘겨주고 새 채권을 받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는 적잖은 돈을 절감해 기본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리스 정부가 허리띠 졸라매기를 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긴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인데, 기본적인 사회보장은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앞으로 3년 동안 재정적자 비율을 해마다 3%포인트씩 줄여나가야 한다. 경기침체 등으로 세수가 줄어들고 있으니 정부 지출을 더 많이 줄여야 할 듯하다. 그 여파로 공공 연금과 급여가 줄어들고, 민간 부문의 소비도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채무 구조조정으로 그리스 정부의 원금과 이자 부담이 줄어들어도 경제 자체는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할 것인가?
IMF와 유럽위원회(EC)는 채권 금융회사들도 고통 분담에 나선다는 점을 보여줘 그리스 국민이 긴축과 구조개혁을 지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가 워크아웃 협상을 거쳐 새로운 국채로 기존 채권을 교환해주려고 할 때 구제금융을 동원해 보증해주면 금리 부담을 더 줄일 수 있다.

둘째,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그리스와 사정이 다름을 보여줘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두 나라 재정적자는 그리스만큼 크지 않다. 국가부채도 많지 않다. 하지만 시장은 국가부채 문제에 아주 민감하다. 두 나라는 시장의 불신을 달래기 위해서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포르투갈은 자본이득세를 물려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얘기만 했다. 주가 등이 떨어져 자본이득을 보기 힘든 마당에 자본이득세가 얼마나 걷힐지 의문이다. 스페인은 거의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리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정부 씀씀이를 눈에 띄게 낮추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재정지출 삭감 말고 경제 구조도 개혁해야 한다. 두 나라 노동시장 문제는 그리스와 사정이 비슷하다. 하루라도 빨리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 국가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만큼으로 낮춰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을 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출이 필수적이다. 노동시장 개혁 없이는 수출과 성장이 불가능하다.

셋째,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유럽중앙은행(ECB)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 ECB는 두 나라 채권을 직접 사들여 도와주고 있다. 이는 그리스 사태가 이베리아 반도로 점염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ECB의 국채 매입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유럽 경제가 긴축 등으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때 물가상승 압력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ECB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지원하겠다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다. ECB는 두 나라가 얼마나 자구노력을 하는지를 보고 나서 도움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제원론에 맞는 이야기인 듯하지만 나중에 ECB가 땅을 치며 아쉬워하게 될 듯하다. IMF는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대가로 구조개혁 등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

넷째, 독일이 국내 소비를 더 늘려 유럽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구실해야 한다. 독일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낮은 국내 투자를 아쉬워했다. 투자를 많이 한 기업이나 개인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 기피 현상은 해결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유럽 최대인 독일 경제가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있다. 이 나라 경제가 활력을 보이면 유럽 경제의 성장률이 높아진다. 이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현재 독일 정책 담당자들은 머리를 모래밭에 처박고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기존 그리스 지원 방안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땜질식 처방이었을 뿐이다. ECB는 점염을 막기 위해 그리스 주변에 만리장성을 쌓는 일을 망설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리더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얼마나 다급한지 인식하지 못했다.
독일 정책 담당자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채무 구조조정 없이 그리스를 살려내기에는 늦은 듯하다. 하지만 유럽 전체를 살리기에는 늦지 않았다. 단지 리더들이 각성하고 통념을 뛰어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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