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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도 인격적 만남, 책 놓지 않는 깨어 있는 스님

중앙선데이 2010.05.23 02:44 167호 31면 지면보기
무비 스님은 ‘견주어 비할 바 없는’ 인물로 교계에 알려져 있다. 스님은 선승(禪僧)이다. 출가 후 해인사 강원(講院)에서 이력을 마친 스님은, 이내 10년간 선원(禪院)에 머물며 납자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행각(行脚: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수행함) 때 수심결임제록을 걸망에 지닌 채, 사교입선(捨敎入禪:교학을 버리고 참선에 듦)이 아닌 의교입선(依敎入禪:교학에 의탁해 참선)의 길을 택했다.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설파한 보조국사의 본찰, 송광사 관음전에 의탁해 정진하던 중 스님은 칠흑 같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마음 광명’을 경험했다.

내가 본 무비 스님

스님은 학승(學僧)이다. 납자의 길에서도 꾸준히 경전을 연찬한 스님은 1967년 동국역경원 제1기 역경연수생에 수석으로 합격, 운허 스님을 모시고 불경 번역에 주력했다. 이후 범어사 강사로 재직 중 스님은 탄허 스님으로부터 ‘엄합론’을 전수받았다. 통광·각성 스님과 함께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스님은 통도사·범어사 강주(講主)로 후학을 양성했다.

스님이 종립 승가대학원장 재직 때 가르친 제자들은 모두 전국 강원의 강주로 활동하고 있다. 훌륭한 제자를 둔 것은 스승의 행복일 것이다. 필자 역시 제자로 말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스님은 소탈한 일상을 유지한다. 무권위적이고 무도그마적인 삶은 자신감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스님은 그 누구와도 인격적 만남을 맺는다. 스님은 늘 깨어 있는 근면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항상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스님은 여분의 시간 속에 화엄경임제록 등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그런 공로로 국민훈장도 받았다.

스님은 죽음을 경험한 분이다. 조계종 교육원장을 맡고 있던 중, 척추 병을 얻어 소임을 놓은 후 대수술과 혼절을 거듭했다. 병과 함께 찾아온 죽음의 사색 속에서 삶의 무상함을 치열하게 느낀 스님은 “신심명(信心銘)을 읽으며 승찬 스님이 겪던 나병의 고통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죽음에 임해본 사람만이 참된 삶의 가치를 안다. 지병 후 1년이 흘러 어느 정도 몸이 추슬러질 무렵, 스님은 이후 삶을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넷 카페 ‘염화실’을 운영하면서 부처님에 대한 은혜갚음의 방법으로 대중의 영혼의 눈을 뜨게끔 하는데 진력해왔다. 스님은 인불사상을 주창하고 있다. ‘부처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위대해서 부처라 하는 것이다’.

병이 거의 나아갈 무렵,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월정사 부도밭을 참배했다. 제자들이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 탑비에 예를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스님은 ‘머지않아 나 역시 저 탑비 가운데 각인(刻印)될 것’임을 생각했으리라.

스님께서는 일가를 이루었다. 제자들은 큰 나무 그늘 아래 총총히 자라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공자의 제자 안회 같은 용학 스님의 보필 속에 스님은 오늘도 ‘견줄 바 없는’ 행복한 회향의 삶을 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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