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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총보다 강하다, 그들의 패션은 국가 경쟁력

중앙선데이 2010.05.23 00:26 167호 20면 지면보기
뜻밖의 일이었다. 지난해 4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장에 몰렸던 전 세계 시선은 주요 현안이나 각국 정상보다는 미국과 프랑스의 ‘최고 레이디’들인 미셸 오바마와 카를라 브루니의 스타일 대결에 집중됐다.
1990년대 최고의 수퍼모델이자 싱어 송 라이터였던 브루니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인으로, 또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가 되면서 화제를 뿌렸다. 프랑스는 패션 종주국으로서의 옛 영화를 되찾았다는 자부심과 미국의 재클린 케네디에 버금가는 역사에 길이 남을 멋쟁이 영부인을 맞이하게 됐다며 흥분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적수가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의 등장이었다.

퍼스트레이디 패션


다시 두 사람의 ‘패션 배틀’ 장면. 당당한 느낌의 블랙 팬츠 슈트(바지 정장) 차림의 미셸 오바마와 얌전한 연보라색 외투를 입고 나온 카를라 부르니의 대결에서의 승자는 오바마였다. 미셸 오바마가 카를라 브루니를 압도했다는 평이 대세였다. 미셸 오바마를 향한 미국 여성들의 지지는 대단하다. 대통령의 내조자로서, 또 하버드 법대를 나온 커리어(변호사) 여성이란 이력도 빠질 것이 없긴 하지만 그녀의 높은 인기에는 뭐니뭐니해도 그녀의 스타일리시함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대담한 프린트의 민소매 원피스와 큼직한 사이즈의 액세서리를 매치한 ‘드레스 다운 룩(dress down look)’에서 고급스럽고 섹시한 최고급 ‘드레스 업 룩(dress up look)’까지 그녀는 ‘패션 고수’의 면모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셸 오바마의 패션이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녀의 패션 철학이 기존의 규칙과 틀을 과감히 깨는 신선함을 주기 때문이다. 60년대 재클린 케네디가 미국 디자이너들의 옷을 즐겨 입음으로써 하이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며 대중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면, 미셸 오바마는 미국 서민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 중 하나인 제이 크루(J crew) 같은 브랜드의 옷을 멋지게 소화해 냄으로써 동시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법한 스타일리시함과 서민들도 따라 할 수 있는 ‘착한 쇼핑 버짓’까지 제안하고 있다.

최고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 대신, 이제 막 발돋움하는 젊은 신인 디자이너, 그것도 소수민족인 중국계 혹은 히스패닉계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선택해 이슈화함으로써 미국 패션계에도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입고 나타난 브랜드의 옷이 수일 만에 동 나는 ‘미셸 신드롬’은 미국 패션계의 부흥에도 톡톡한 몫을 하고 있다.

패션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다.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더욱 그렇다. 퍼스트레이디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그 나라 스타일과 문화의 수준을 표현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서는 패션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일등 외교관의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워너비 재키(What Jackie taught us)』란 책을 쓴 미국의 여성 기업인 티나 산티 플래허티는 “옷은 총보다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다. 61년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 사건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껄끄러운 사이가 되자 재클린이 프랑스 순방에 동행, 프랑스 국민과 언론의 환대를 받음으로써 관계 정상화에 역할을 한 점을 사례로 들었다. 책은 “당시 재클린은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인 지방시를 입었는데 그건 프랑스 패션업계를 위한 특별한 조치였다”고 적고 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국가 경쟁력이자 외교적 홍보 수단이라 해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그 나라의 패션산업과 문화의 현주소, 국가의 품격과 전통, 가치관 등이 패션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제품의 경쟁력, 나아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패션이 순수한 크리에이티브와 훌륭한 인적 자원만으로도 수천 배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은 영화·게임·애니메이션 산업 등과 다를 게 없다.

따라서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을 피상적인 잣대로 사치나 호화를 조장한다는 정도로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특히 ‘값’을 기준으로 비싸다거나 호화롭다고 가십거리를 논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특히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 커진 지금 한국의 퍼스트레이디의 역할도 과거 전통적 이미지인 국모상에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퍼스트레이디도 이젠 대한민국이란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패션 리더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내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마침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세계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의 룩에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칸과 할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스타들의 ‘레드 카펫 룩 전쟁’ 못지않게 각국 퍼스트레이디 사이의 불꽃 튀는 경쟁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특히 한국이 주최국인 만큼 한국의 퍼스트레이디가 특유의 우아함과 친밀함을 잘 이미지화한 스타일로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패션 산업에도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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