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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진짜 ‘북풍’은 안보를 외면할 때 분다

중앙일보 2010.05.20 20:09 종합 34면 지면보기
“오죽 답답하면 김정일에게 망명을 제안하려는 생각까지 해봤다. ‘당신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돈도 실컷 줄 테니 우리 민족을 위해 먼 나라로 가서 돌아오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한 386 출신 민주당 의원은 언젠가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당이 남북관계를 아무리 잘 해보려고 해도 김정일에만 이르면 답이 안 나온다. 그는 우리 당에 천형(天刑)이다.”



그의 한숨처럼 민주당은 김정일과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일이 여러 번 된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다가간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북한은 두 차례의 서해 도발로 화답했다. 미국과의 불화를 무릅쓰고 햇볕정책을 승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북한은 미사일과 핵실험을 선사했다. 지난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숨진 지 사흘 만에 북한은 두 번째 핵실험으로 ‘조포(弔砲)’를 쐈다. 그 노 대통령의 1주기(23일)를 사흘 앞두고 발표된 천안함 조사 결과는 민주당이 모처럼 띄워 올리려던 ‘노풍’에 또 한번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지난 두 달 동안 북한의 만행에 눈을 감고 좌초설이니, 미군 오폭설이니 황당한 주장을 해왔다. 민주당이라고 북한이 예뻐서 이렇게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건 아닐 것이다. 근본 원인은 당내에 북한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과 전략이 없는 데다 노력조차 게으른 탓에 있다.



민주당 수뇌부를 보면 시시각각 급변하는 북한의 현실을 따라잡고, 미래를 예측하려 고민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북한을 다룰 때 반드시 살펴야 하는 미국·중국·일본 변수에도 통찰이 부족하다. 민주당 내엔 외교통상부 장관과 4성 장군을 역임한 외교안보전문가들이 의원으로 있다. 그러나 “당의 정체성과 지지기반을 생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가로막혀선지 이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렇게 북한에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없다 보니 북한이 비이성적인 도발을 할 때마다 관성적으로 북한을 감싸고 정부를 비난하며 표 잃지 않을 궁리만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민주당은 반성해야 한다.



민주당은 천안함 사태로 인한 북풍을 걱정하지만, 오랜 정치적 경험을 축적한 우리 유권자들이 이번 사태만을 갖고 표심을 결정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진짜 북풍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조사 결과를 외면하고 궤변을 늘어놓는 정당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림으로써 불어닥칠지 모른다. DJ를 계승한 민주당이 북한을 포용하고 대화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명백히 드러난 북한의 잘못에까지 눈을 감는 건 진정한 포용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북한의 버릇을 나쁘게 들여 또 다른 만행 가능성을 높이고 포용을 반대하는 세력의 입지만 키워 주는 행위다.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미국 민주당도, 일본 민주당도 모두 신뢰하고 지지를 표명한 천안함 조사 결과를 인정하고, 북한의 석고대죄(席藁待罪)를 촉구하는 것이다. 북한 포용은 천안함 문제가 납득할 수준으로 처리된 뒤 주장해도 늦지 않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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