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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잔치인데 경찰이 100명 깔려 …

중앙일보 2010.05.20 01:38 종합 20면 지면보기
19일 오후 서울 강남의 I호텔 주변. 기동대와 특공대를 포함한 경찰 100여 명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경찰은 호텔로 들어가는 사람들 중 일부를 붙잡아 검문검색도 했다. 이날 호텔에서는 이모씨의 고희연이 열렸다.


어제 강남 호텔 조폭 원로 고희연
조양은·김태촌 등 수백 명 초청
경찰, 거물급 찾아가 불참 종용도

경찰은 이날 잔치의 주인공과 참석자 모두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씨는 한국 주먹계의 원로였다. 서울 영등포의 오래된 폭력 조직인 ‘새마을파’의 두목이었다. 이날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 칠성파 두목 이강환씨,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도 초대 손님 명단에 포함됐다. 모두 왕년에 주먹으로 이름을 날린 이들이다.



이날 300여 석이 넘는 연회장의 테이블은 대부분 채워졌다. 한복을 점잖게 차려입은 이씨에게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축가를 부르는 유명 연예인들의 모습도 여러 명 보였다. 하지만 조양은씨 등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행사가 폭력 조직들이 세(勢)를 모으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해 행사 시작 전부터 경찰력을 배치했다. 30여 명의 취재진도 현장에 나왔다. 경찰은 며칠 전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모임을 자제해라. 될 수 있으면 초청도 취소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씨는 “집안 일일 뿐이다. 이미 초청장을 돌렸는데 어떡하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초대받은 이들 중 거물급에게 참석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조양은·이강환·김태촌씨 등은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내 폭력조직의 한 리더급 인사는 “경찰로부터 ‘괜히 검문검색 당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2008년부터 강남 일대 대형 호텔에서 치러진 결혼·장례·고희연 등 10여 회의 행사가 폭력 조직의 세 결집 모임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요즘의 조직들은 사업을 위해 조직간 연합이 필요할 때 경찰의 견제를 피하려고 경조사를 계기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의 이같은 시각에 하객들은 불만을 나타냈다. 일부에서는 “남의 집 잔칫날 왜 찬물을 끼얹느냐”며 경찰과 취재진을 상대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이씨는 하객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짤막한 인사말을 했다. 경찰 관계자는 “향후에도 폭력 조직이 서울 한복판에서 세를 과시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강력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인식·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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