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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년 됐는데 “그린푸드 존이 뭐죠”…학교 앞에서 햄버거 버젓이 팔아

중앙일보 2010.05.20 01:37 종합 20면 지면보기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서초초등학교 앞. 수업이 끝난 직후라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집으로 향했지만 간식을 먹기 위해 인근 음식점이나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사회 프런트] 겉도는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 제도

교문 옆에는 ‘그린푸드 존(greenfood zone)’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학교 주변 200m 이내에서 비만과 영양 불균형을 유발할 식품들을 추방하겠다는 취지로 지정한 어린이식품안전보호구역이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됐다. 특히 이 안에서 우수판매업소로 지정되면 햄버거·컵라면·초콜릿 등의 판매가 금지된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팻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튀김·라면에 햄버거까지 온갖 식품이 별 제약 없이 팔리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 19개 식당과 음료점 중 우수판매업소는 한 곳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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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분식점에서는 비만 체형인 4학년 김모군이 튀김 한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김군은 “학교 급식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방과후에는 간식을 꼭 먹는다”며 “주문할 때 열량 같은 건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더블딜럭스버거 기준 190g당 599㎉, 어린이식품 중 식사대용품의 고열량·저영양식품 기준인 500㎉ 초과
주변 편의점에서 만난 6학년 배모군은 ‘더블딜럭스버거’를 먹고 있었다. 포장지에 적힌 1회 제공량(190g)당 열량은 599㎉. 어린이식품 중 식사 대용품의 고열량·저영양 기준인 500㎉를 초과했다. 배군은 앞서 점심 급식까지 먹은 터라 이날 낮에만 권장량(한 끼당 700㎉)을 훌쩍 넘는 1200㎉ 이상을 섭취한 셈이다.



유일한 우수판매업소인 ‘신포우리만두’ 관계자는 “한 달 전쯤 구청 직원이 우수판매업소에 가입하라고 권유해 등록했다”며 “사실 우수판매업소가 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인 이길화씨는 “우수판매업소에서 팔 수 없는 식품은 햄버거·초콜릿 등”이라며 “만두가게를 우수판매업소로 지정한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교 주변도 비슷했다. 서울 종로구의 혜화초등학교 앞 그린푸드 존에는 식품·음식 판매업소가 14곳이다. 하지만 우수판매업소는 한 곳도 없었다. 한 가게에서는 엿·콜라맛 사탕 등 색깔이 현란한 100∼500원짜리 저가 식품을 팔고 있었다. 2학년인 장모군은 “달고나와 슬러시가 맛있어 자주 찾는다”며 “먹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와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이 그린푸드 존 시행 1년을 맞아 서울시내 초등학교 9곳을 점검한 결과 그린푸드 존 내 식품 판매업소 123개 중 우수판매업소는 5곳에 불과했다. 그것도 현행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상 판매에 제약이 없는 김밥·떡볶이 등을 취급하는 분식점들뿐이었다. 그린푸드 존의 취지를 제대로 살린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전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 전국 초·중·고 1만1000여 개 주변 그린푸드 존의 우수판매업소는 306곳뿐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의 김자혜 사무총장은 “그린푸드 존 제도가 별 효과도 없는 우수판매업소 지정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어린이 비만 예방에는 거의 기여를 못한다”며 “특히 홍보 부족 탓에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총장은 “채소·과일·생선 등 건강에 좋고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도록 하는 그린푸드 교육도 너무 부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11일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생 133명에게 ‘그린푸드 존을 아느냐’고 물어본 결과 13명(9.7%)만이 ‘안다’고 답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사인 한모씨도 “그린푸드 존은 들어봤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그린푸드 존(greenfood zone)=어린이식품안전보호구역. 초·중·고 주변 200m 이내에서 부정·불량 식품과 정서 저해 식품 판매를 금지해 어린이 비만, 영양 불균형을 막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5월 도입했다. 그린푸드존 내 학교 매점과 우수판매업소로 지정된 업소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을 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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