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이프 오르간, 이젠 엄숙함서 벗어나야죠

중앙일보 2010.05.20 00:31 종합 28면 지면보기
파이프 오르간-. 여러 단의 손 건반에 발 건반이 달린 웅장한 악기다. 신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노래하는 데 주로 쓰인다. 100여 종의 음색이 공연장을 압도한다. 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프랑스의 오르간 거장인 나지 하킴(55)과 한국의 김희성(49·이화여대 교수)씨가 마주 앉았다. 20일 내한 공연을 하는 하킴을 김씨가 팬으로서, 또 동료 연주자로서 초대했다.


서울 온 거장 나지 하킴 - 김희성 교수 만남

하킴은 세계적 연주자다. 국제 연주·작곡 콩쿠르에서 10여 차례 우승했다. 김씨는 “하킴이 작곡한 음악은 연주자들이 꼭 다뤄봐야 하는 교과서다. 전설적인 오르가니스트였던 올리비에 메시앙의 뒤를 이어 생 트리니테 성당에 임명됐던 것 또한 대단한 일”이라고 인사했다. 하킴은 비(非) 프랑스 태생 최초로 생 트리니테 성당에서 오르간 주자(1992~2008년)로 임명돼 화제가 됐다. 1869년 파이프 오르간이 완성된 후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만이 뽑혔던 곳이다. 반면 하킴은 “오르가니스트들이 엄숙주의와 무거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성=학생들에게 당신 작품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몇 곡이나 작곡했나요.



오르간 연주자 나지 하킴(왼쪽)과 김희성씨가 세종문화회관 파이프 오르간 앞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 뒤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악기는 총 8098개의 파이프로 이뤄졌다. [김태성 기자]
하킴=작품에 번호를 매기지 않아요. 내가 죽은 후에 누군가 붙일 수도 있겠지만.(웃음)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를 즐깁니다. 항상 이번 작품이 나의 마지막 음악인 것처럼 생각하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것과 비슷하죠.



김=(1991년 나온 하킴의 CD를 건네며) 즉흥연주로 유명합니다. 이 앨범을 들으면 음악이 여러 겹으로 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다층적이라고 할까요.



하킴=레바논에서 태어났고 35년 전 파리로 건너 왔어요.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면 새로운 색채와 에너지가 나오죠. 서로 다른 것을 저의 직관으로 혼합한다고 할까요.



김=오르간 연주자의 무대는 좁은 편인데.



하킴=프랑스 오르가니스트들은 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대중음악회는 많지 않아요. 성당의 엄숙함에 묻혔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어둡고 부드러운 음악만을 해서는 곤란하다고 봐요.



김=오르간의 특징이 아닐까요.



하킴=그게 오르간 연주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죄의식을 강조하는 것 같은 연주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신은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으로 활력을 주고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보여줘야 해요.



김=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겠죠.



하킴=(지난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씨 공연의 팸플릿을 보며) 당신이 색소폰과 함께 재즈를 선보였던 것처럼 말이죠. 메시앙은 재즈를 싫어했지만(웃음), 나는 이런 시도가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김=재즈를 주제로 모험을 했죠. 오르간으로도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킴=맞아요. 생 트리니테 성당에서 13년간 있었는데, 마지막에서야 오르간을 조금 이해하게 됐어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악기입니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같죠. (웃음)



김=당신 공연에선 힘이 느껴집니다. 서울 공연을 짧게 소개한다면.



하킴=제 작품과 바흐·프랑크·메시앙을 연주합니다. ‘섬집 아기’ ‘아리랑’ 멜로디로 즉흥연주도 하고요.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나지 하킴=레바논 베이루트 태생. 1975년 프랑스로 유학,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했다. 현재 런던 트리니티 컬리지와 프랑스 볼로뉴 국립음악원 등에서 가르치고 있다.



◆김희성=연세대 음대에서 피아노, 동대학원에서 오르간을 전공했다. 텍사스 주립대에서 공부했다. 1993년 이후 매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독주회를 열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