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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뷰] ‘미스 사이공’

중앙일보 2010.05.20 00:30 종합 28면 지면보기
킴(왼쪽)과 크리스를 연기한 김보경과 마이클 리. 빼어난 가창력을 보여준 커플이었다. [KCMI 제공]
그 흔한 박수 한 번 없었다. 무언가에 압도된 듯, 박수라도 치면 그 고요함이 깨질까 모두들 숨 죽였다. 어떤 뮤지컬이 이런 진중함을 선사할까.


매끄러워진 노랫말, 숨죽인 객석 …

뮤지컬 ‘미스 사이공’.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다. 4년 전 국내 처음 공연됐다. 너무 익숙해 식상할지도 모를 작품. 게다가 김보경·마이클리·이건명·김선영 등 출연진도 4년 전과 얼추 비슷하니 말이다. 유행처럼 쓴다는 ‘아이돌 캐스팅’도 없었다. 뭐가 다르랴 싶었다. 그런데 놀라웠다. 지난주 시작된 서울 충무아트홀 공연은 4년 전보다 매끄러웠고, 최근 고양·성남 공연보다도 단단해져 있었다.



작품은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이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한다는 얘기다. 자연히 가사의 전달력이 완성도를 결정한다.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건 이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꿈속의 한 장면’이란 노래에서 4년 전 “그토록 찾던 꿈”으로 불리었던 대목은 “그토록 바라던’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저 멀리 있는 곳”은 “너무나 아득한”으로 불렸다.



무슨 대수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각 음절의 음가나 강세에 적확하게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를 배치하는 건, 또 다른 예술이다. 미묘한 단어와 발음의 차이에서 객석의 흡인력은 출렁댄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노랫말이 귀에 쏙쏙 박혔다는 것, 그래서 그 비극적 드라마가 가슴에 아로새겨졌다는 것, 그건 ‘번역의 미학’이었고 ‘미스 사이공’의 진보였다.



곳곳에서 보여지는 듀엣송은 절묘했다. 애틋한 러브 테마는 ‘해와 달’ 한 곡에 불과했다. 나머지 노래엔 처절한 투쟁과 설득이 스며 있었다. 엘렌과 킴이 다른 공간에서 부를 땐 그 거리만큼 평행선을 달렸고, 투이와 킴은 격하게 충돌했으며, 존·크리스·엘렌 3명이 부를 땐 각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허공을 떠돌았다. 이토록 아련한 선율에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와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다니.



아들을 지키기 위해 “손 대지 마!”라는 킴(김보경 분)의 짧은 문구에 섬뜩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4년 만에 돌아온 김성기가 보여준 ‘엔지니어’는 소름 돋을 만큼 야비했다. 9월 12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02-518-7343.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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