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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맞는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

중앙일보 2010.05.20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부처님오신날(21일)을 맞아 17일 충남 계룡산에 있는 국제선원 무상사를 찾았다. 무상사는 한국 선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린 숭산(崇山) 스님(1927~2004)의 제자인 외국인 스님들이 꾸리는 절이다. 거기서 숭산 스님에게서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던 대봉(大峰) 스님(60·무상사 조실)을 만났다. 푸른 눈의 선사, 그에게 ‘붓다’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끊어라, 의견을 놓아라 거기서‘진짜 나’를 만나리니 …

대봉 스님은 “오랜 전통을 가진 아시아의 불교는 상당히 계급적이다. 승과 속, 남과 여가 매우 차별적이다. 무상사에선 출가자와 재가자, 남성과 여성의 숙소만 다를 뿐 수행과 일상에서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당신은 유대계 미국인이다. 어릴 적부터 유대교 환경에서 자랐다고 들었다. 당신에게 ‘붓다’는 무엇인가.



“붓다는 내게 물음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Who are you?)’라는 의문이었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서 유대교 회당에도 다녔다. 부모님의 종교관은 폭이 넓었다. 율법을 따지지 않았다. 나도 그 영향을 받았다. 붓다의 가르침을 처음 접했을 때 ‘매우 명쾌하다(Very clear)’ ‘제대로 된 것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토록 명쾌했나.



“인간의 본성은 퓨어(Pure·순수)하고, 클리어(Clear·깨끗함)하다는 거다. 그게 명쾌했다. 불교를 믿는 이유도 명쾌했다. 나의 본성을 깨닫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함이었다.”(Clear your mind and help other people.)



-‘퓨어’는 뭐고, ‘클리어’는 또 뭔가.



대봉 스님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분홍색이었다. “이 휴대전화를 보라. 순수한 분홍색(Pure pink)이다. 그래서 ‘퓨어’다. 그럼 ‘클리어’는 뭔가. ‘클리어’는 이 휴대전화를 꿰뚫어보는 거다. 그래서 전화기의 순수한 분홍색 겉모습(현상)을 보면서, 동시에 전화기의 몸체를 꿰뚫어 본질을 보는 거다.” 그건 현상과 본질을 동시에 보라는 말이었다.



-세상 사람들도 저마다 휴대전화를 보지 않나.



“맞다. 사람들은 모든 걸 보고 있다. 그러나 꿰뚫어보진 못한다. 왜 그런가. 생각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 당신이 무언가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Holding something in your mind.) 그게 바로 집착이다. 집착을 가진 사람은 꿰뚫어보지 못 한다. 본질을 보지 못 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궁금해졌다. 대봉 스님은 어떤 사연으로 불교를 만난 걸까. 또 어떤 이유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했을까.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이다. 코네티컷 컬리지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는 물리학도였다.



-물리학을 통해서 무엇을 찾고 싶었나.



“나는 이 우주의 진리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1년 6개월 동안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결국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왜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나.



“당시 나는 이 인간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이 고통이 어디서 오고, 이 고통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물리학도, 정치학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종교 집단은 서로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포커스를 맞췄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부처님도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신 것이더라.”



- 서구 심리학도 한계가 있지 않나.



“맞다. 대학 2학년 때 병원에서 일했다. 병원에서 보니 인간의 경험은 한계가 없더라. 그때 깨달았다. 학문적 공부를 통해선 그 모든 경험을 해낼 수는 없겠구나. 병원에서 일할 때 의사보다 간호사들이 환자를 더 잘 다루는 걸 종종 봤다. 어떻게 하면 저런 지혜를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당시 내가 원했던 건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다.”



-정식으로 불교를 만난 건 언제였나.



“뉴헤이븐 코네티컷에서 숭산 스님이 선원을 하고 있었다. 거긴 예일대 주변이다. 그래서 숭산 스님의 제자들도 예일대 학생이나 교수가 많았다. 어느 날 거기서 숭산 스님이 법문을 한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찾아갔다. ”



-숭산 스님과의 만남은 어땠나.



“법문을 듣던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어떤 것이 미친 것이고, 어떤 것이 미치지 않은 겁니까?’(What is insanity and what is sanity?)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병원에서 심리상담사로도 일했기에 무척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그런데 숭산 스님은 ‘insanity(정신 이상)’란 말뜻을 몰랐다. 그래서 학생에게 다시 물었다. 학생은 ‘What is crazy and what is not crazy? (어떤 게 미친 것이고, 어떤 게 미치지 않은 겁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숭산 스님은 답을 했다.”



-뭐라고 답했나.



“‘미쳤다는 건 어떤 것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는 거다. 조금 집착하면 조금 미친 거고, 많이 집착하면 많이 미친 거다. 만약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치지 않은 자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딱 알겠더라. 이 대답이야말로 내가 10년간 심리학을 공부하고 병원에서 배운 것보다 낫구나.”



-그럼 모두가 미쳤다는 얘긴가.



“그렇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미쳤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나’라는 것은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의 산물인 ‘나’를 없애고, 진정한 본성을 찾기 위해 참선을 하는 거다. 나는 그때 ‘저분이 나의 스승이구나’ 직감했다. 그때가 1977년 3월이었다.”



-숭산 스님과 직접 대면하진 않았나.



“대면했다. 거기서 사흘간 묵언하고, 108배하고, 좌선한 뒤 숭산 스님과 마주 앉았다. 숭산 스님은 제게 ‘너는 무엇인가? (What are you?)’라고 물었다. 나는 답하지 못했다. 숭산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면 나의 생각과 당신의 생각은 다르다. 그런데 당신이 생각을 끊게 되면 나의 마음과 당신의 마음은 하나다. 나의 ‘모를 뿐’이란 마음과 당신의 ‘모를 뿐’이란 마음이 같다. 그게 생각하기 이전의 마음이다. 바로 그 ‘생각 이전(Before thinking)’이 우리의 참 본성이다.”



그리고 숭산 스님은 주장자를 들더니 “이 막대기의 실체와 해와 달과 별의 실체가 다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봉 스님은 그때 “이것이 내가 평생 듣고 싶어했던 얘기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길로 숭산 스님 밑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4년 서울 화계사에서 출가했다. 나중에는 숭산 스님의 전법게까지 받았다. 대봉 스님은 2000년 계룡산에 국제선원 무상사를 창건한 뒤부터 줄곧 조실(祖室·절집의 최고 어른이자 스승)을 맡고 있다.



바깥에서 대봉 스님과 함께 무상사 경내를 거닐었다. 언덕 위에 작은 전각이 하나 보였다. 대봉 스님은 “저건 올해 3월에 지은 산신각(山神閣)”이라고 답했다. 뜻밖이었다. 무상사는 신도들의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오직 수행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사찰이다. 그게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집의 재정을 위해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런데 산신각이라니, 이유를 물었다.



“처음에는 무상사 신도들도 반감을 느끼더라. ‘왜 산신각을 짓느냐?’는 물음도 많았다. 중국 불교와 일본 불교에는 산신각이 없다. 이건 한국 불교에만 고유한 것이다. 그러니 산신각의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 이건 자연에 대한 존경을 뜻한다. 이 우주는 우리 인간만의 우주가 아니다. 이 세계는 개와 고양이, 나무, 코끼리 등 모든 존재의 세계다. 인간만의 세계가 아니다. 산신각을 통해 우리는 모든 존재의 평등함(All being’s equality)을 보는 거다. 서양 사람들은 불교의 이러한 메시지에 열광한다. 이 얘길 법회에서 했더니 무상사 신도들도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건 산을 통해서 붓다의 몸을 보기 때문인가.



“그렇다. 이 모든 우주가 부처이고, 부처의 몸이다.”(This whole universe is Buddha, Buddha’s body.)



-사람들은 왜 그걸 못 보나.



“‘마이 오피니언(나의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사람은 대부분 생각으로 사물을 본다. 실은 모든 문제가 거기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마이 오피니언’을 버리는 걸 두려워한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린다. 그런데 ‘마이 오피니언’을 꽉 잡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나무와 같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서 소화를 못 시키면 어찌 되나. 안에서 썩는다. 그럼 몸이 아프다. 마찬가지다. 생각이 들어왔을 때 소화시키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이 썩는다.”



-‘마이 오피니언’을 버리는 길은 다양하다. 불교에도 여러 수행법이 있지 않나.



“수행법은 테크닉이다. 중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방향성(Direction)이다.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을 가져도 방향성이 틀리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그 방향성은 한마디로 뭔가.



“당신의 의견을 내려놓아라! 생각 이전에는 의견이 없다.”(Put down your opinion! Before thinking, no opinion!)



-그렇게 의견을 내려놓다 보면 붓다가 설한 ‘무아(無我)’를 알게 되나.



“그렇다. 표현은 다르지만 뜻은 하나로 통한다. 거기서 우리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



계룡=백성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연재 기사 ‘사도 바울의 길을 따라서-하편’은 27일자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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