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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이승철 40억짜리 콘서트 여는 이유

중앙일보 2010.05.20 00:25 경제 21면 지면보기
가수 이승철(44)은 전천후다. 낯빛을 달리하는 무수한 노래를 죄다 제 목소리에 맞게끔 불러낸다. 타고난 미성(美聲)에 실린 그 노래들은 대중의 마음을 훔쳐 내는 데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데뷔곡인 ‘희야’부터 지난해 압도적인 흥행을 기록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히트곡을 쏟아 냈다.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이 최고”라고 믿는 그가 모험과 변신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승철이 노래를 시작한 지 올해로 꼬박 25년이 됐다. 열아홉 살에 록밴드(부활) 보컬로 데뷔한 그는 제법 출렁이는 음악 생애를 살아왔다. 최고의 하이틴 스타에서 대마초 스캔들에 휘말리며 추락했고, 이후 다시 정점에 오르기까지 그를 지탱한 건 공연이었다. 20년간 1000회 이상 이어진 ‘이승철 콘서트’는 그를 우리 가요계의 맨 앞자리로 이끌었다.



올해는 데뷔 25주년 기념을 기념해 초대형 콘서트를 한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6월 5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펼친다. 40억원의 예산을 들여 60인조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초대형 무대다.



글=정강현 기자 , 사진=진&원 웍스 제공



이승철은 요즘 ‘격(格)’이란 말을 자주 쓴다. 데뷔 25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가요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곰곰 생각하다 떠올린 말이라고 한다. 25년간 정상급 가수의 자리를 지켜오면서 “선배로서의 격에 맞는 무한 책임감이 뒤따른다”고 했다. 그가 25주년 콘서트를 잠실 주경기장에서 하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잠실 주경기장은 가수의 격을 나타내는 무대”라며 “5만 석에 가까운 객석을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최고의 공연을 만들 노하우가 없으면 도전하기 힘든 곳”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년간 1000회 이상 이어지며 1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승철 콘서트’는 다양한 볼거리와 최고급 사운드를 선보이며 ‘명품’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2시간 남짓 펼쳐지는 콘서트에선 25년을 쌓아온 그의 음악적 내공이 빛을 발한다. 이번 25주년 기념 공연은 15일 대전을 시작으로 인천(22일)·대구(29일)·서울(6월 5일)로 이어진다.



그의 음악 생애를 돌아보고자 15일 오후 25주년 공연이 펼쳐지는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을 찾았다. 리허설 현장부터 그를 동행하며 인터뷰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뒤풀이까지 그를 계속 따라다니며 질문을 던졌다.



#15일 PM 4:00



공연 시작 네 시간 전. 두 번째 리허설이 한창이다.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는 사운드를 일일이 체크하며 첫날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100명이 넘는 공연 스태프를 챙기는 모습에서 그의 ‘격’이 읽혔다. 공연장 둘레에선 30여 명의 팬클럽 회원이 그의 사인이 들어간 25주년 기념 앨범을 판매하고 있었다. 공연장의 CD 판매 수익금은 아프리카 케냐의 우물 파기 사업에 사용된다.



-팬들이 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자발적으로 좋은 일에 동참해주니 너무 고맙죠. 우물 파기 같은 사회 활동은 앞으로 더 확대하고 싶어요.”



#6:00



공연 직전 샐러드와 닭가슴살·연어구이 등으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의 부인 박현정씨가 집에서 챙겨온 음식이다. 그는 평소 “결혼 후 감성이 더 풍부해졌다”며 아내 자랑을 늘어놓곤 한다. 그의 매니지먼트를 책임지고 있는 박씨는 공연장에 늘 동행한다.



-25주년을 맞은 가수의 ‘격’이란 어떤 걸까요.



“책임감이죠. 팬들에 대한 책임도 필요하고 음악에 대한 책임도 필요하죠. 현역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꾸준히 받기 위해선 그에 따르는 강한 책임감이 필요해요.”



-주경기장 공연도 그런 ‘격’과 통하겠군요.



“그렇죠. 사실 처음엔 걱정이 앞섰어요. 주경기장 3층 맨꼭대기에 앉은 관객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죠. 당연히 무대 규모가 커야 했고 그래서 떠올린 게 오케스트라와 록의 만남입니다.”(※6월 5일 잠실 주경기장 공연엔 60인조 오케스트라와 5.1채널 사운드, 3D 영상 등이 동원된다.)



#8:00



60인조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로 콘서트가 시작됐다. 8000여 객석이 가득 찼다. 가족과 공연장을 함께 찾은 30~40대 여성 팬들이 많았다. 그의 공연은 유아방을 운영하는 등 세심한 팬 서비스로 유명하다. 첫 곡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의 전주가 흐르자 모든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이승철은 이날 공연에서 온갖 장르를 뒤섞은 듯한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특유의 감미로운 발라드는 물론 댄스 음악과 반짝이 의상을 입고 트로트까지 불렀다.



#10:30



공연이 끝난 뒤 그의 마이바흐 차량에 동석하고 호텔로 이동했다. 인터뷰는 그의 호텔 방에서 와인잔을 부딪히며 이어졌다.



-노래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죠.



“매주 공연할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하죠. 노래는 사실 90% 이상 타고나야 되거든요. 저는 지금도 악보를 제대로 못 보지만 노래를 하잖아요. 감사한 일이죠.”



-명품 공연으로 자리 잡은 이유가 뭘까요.



“우선 제 노래의 장르가 다양한 편이잖아요.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드릴 수가 있죠. 또 하나는 조직력이에요. 주변에 좋은 참모들이 많아서 공연 때마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우상이라 할 만한 선배가 있습니까.



“(김)현식이 형이랑 (조)용필이 형이죠. 현식이 형은 음악적 유산이 참 많은 분이에요. 용필이 형이야 천운을 타고난 진정한 가왕이시고요. 전 아무리 버둥대도 그 자리엔 못 오를 것 같아요.”



-부활은요?



“부활이 없으면 저도 없죠. 부활이 아니었다면 저는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가수로 지내다가 묻혔을지도 몰라요. 부활에서 익힌 음악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거죠. 밴드 출신이란 자존심도 있고요.”



#16일 AM 01:30



와인 대신 맥주가 돌고 있었다. 25년 음악 세월을 쌓은 그에게 가장 아팠던 순간을 물었더니 “표절 시비”란 답이 돌아왔다. 2007년 그의 히트곡 ‘소리쳐’가 ‘리슨 투 마이 하트’란 팝 음악과 일부 유사하다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는 “원작자에게 떳떳하게 판단을 구해서 공동 작곡가로 표기했다”며 “표절 시비에 대처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50주년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저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일흔이 넘더라도 트렌드를 좇을 수 있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글= 정강현 기자,

사진= 진&원 웍스 제공






[시시콜콜] 이승철이 꼽은 ‘내 인생의 노래 3곡’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떴을 때도 종종 조용필 대리운전 했다네요




25년간 그의 음악 인생을 지탱해 준 무수한 히트곡 가운데 이승철 자신이 꼽는 최고의 곡은 뭘까. 그에게 자신의 음악 인생을 떠받쳐온 노래 3개를 꼽아달라고 했다. ‘희야’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꼽혔다. “발표할 때마다 음악적 삶이 업그레이드 됐던 곡”이라고 소개했다.



◆‘희야’(1986)=이승철의 데뷔곡이다. 그의 음악 생활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고교 1학년 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독서실 주인 아들이 그룹사운드를 결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갔다.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불렀는데 그 자리에서 발탁됐다. 이후 그는 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다니며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했다.



그즈음 동네 형이었던 김태원이 그를 부활의 보컬로 영입했다. 86년 부활의 첫 앨범 타이틀이 ‘희야’다. 미소년 보컬 이승철의 인기에 힘입어 록 앨범으로선 유래가 드문 3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1989)=부활에서 탈퇴한 뒤 솔로로 데뷔한 첫 앨범이다. 재즈 발라드풍의 이 곡은 그를 단숨에 하이틴 스타로 올려놓았다. 이즈음 그는 선배인 조용필의 운전기사 역할을 종종 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조용필이 부르면 기다렸다가 핸들을 잡는 식. 그는 “당시엔 나도 꽤 이름을 날리던 가수였지만 조용필이 나를 부른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영광스러웠다”고 회고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2009)=10집 앨범 ‘뮤토피아’ 수록곡이다. 서정적인 가사 덕분에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인터넷에서 추모곡으로 불리면서 히트를 기록했다. “팬층이 넓어진 계기가 됐다”고 한다.



정강현 기자






이승철은



데뷔: 1985년 ‘부활’



별명: 깡통 로봇(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라는 뜻)



◇정규 앨범



1집 Part 1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1989)’



1집 Part 2 '이승철 Part 2(1989)'



2집 ‘노을 그리고 나(1990)’



3집 ‘방황(1992)’



4집 ‘더 시크릿 오브 컬러(1994)’



5집 ‘더 브릿지 오브 소닉 헤븐(1996)’



6집 ‘1999(1999)’



6.5집 ‘컨페션(2001)’



7집 ‘더 라이브 롱 데이(2004)’



8집 ‘리플렉션 오브 사운드(2006)’



9집 ‘더 시크릿 오브 컬러 2(2007)’



10집 ‘뮤토피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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