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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脣亡齒寒

중앙일보 2010.05.20 00:11 종합 33면 지면보기
기원전 655년 중국 춘추시대가 끝나갈 쯤의 일이다.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괵나라 땅을 차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진과 괵나라 사이에 우(虞)나라가 있었다. 진헌공은 우나라 왕에게 진귀한 보물을 잔뜩 실어 보냈다. ‘괵나라를 칠 테니 길을 비켜 달라’는 뜻이었다. 우나라 대부 궁지기(宮之奇)가 이 말을 듣고 ‘길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며 펄쩍 뛴다. “우와 괵나라는 서로 의존해야 할 소국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脣亡齒寒),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 역시 화를 당할 것이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보물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길을 내주고 만다. 결과는 뻔했다. 진나라는 괵나라를 친 뒤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했다. ‘입술을 잃은 아픔’은 컸다. 왕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됐으니 말이다.



괵나라 멸망 이야기를 전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소위 말하는 ‘광대뼈와 잇몸은 서로 의존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輔車相依, 脣亡齒寒)’는 말은 우와 괵나라를 두고 나온 것이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순망치한과 함께 ‘보차상의(輔車相依)’라는 말을 나란히 쓰고 있다.



‘순망치한’의 논리는 현대 중국 외교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1950년 10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이 그랬다. 당시 최고 실력자 마오쩌둥은 전쟁 개입 여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지도부에서는 파병 반대 주장이 많았다. 건국(1949년)이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어지러운 데다, 경제가 허약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그러나 마오는 파병을 결정했다. 그가 당시 제시한 게 바로 ‘순망치한, 호파당위(脣亡齒寒, 戶破堂危)’였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것이요, 대문이 무너지면 집 본채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마오쩌둥은 전쟁개입으로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을 잃었고, 14만 명의 군인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을 ‘미제국주의의 침입으로부터 입술과 대문을 지켜낸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다.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중국의 반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는 중국인들의 인식 저변에 ‘순망치한 호파당위’의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는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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