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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거품 붕괴론, 누구 향한 저주인가

중앙일보 2010.05.20 00:08 종합 34면 지면보기
아파트 때문에 또 아우성이다. 거래가 실종되고 가격마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개인 자산의 76%를 부동산에 묻어둔 만큼 온 사회의 신경은 곤두서고 있다. ‘거품 붕괴론’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인터넷에는 현란한 통계와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된 괴담이 판치고 있다. 4년마다 도지는 돌림병이라 여기기엔 간단치 않다. 산은경제연구소와 현대경제연구원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실패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탓인지 모두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다.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주택시장이 10~13년을 주기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해온 것이 선진국들의 경험이다. 다만 가격 조정이 거품 붕괴라는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지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부동산 가격 급등이 필요조건이다. 거품 붕괴 전 5년간 일본의 6대 도시 땅값은 3배나 뛰었다. 1997~2006년 아일랜드의 주택값은 252%, 스페인은 195%, 미국은 132% 올랐다. 한국은 38.4% 오르는 데 그쳤다.



외환위기에 따른 통계착시를 없애기 위해 2000~2006년 주택가격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20개 주요 도시 집값은 100% 이상 올랐지만 한국은 평균 46%였다. 물론 지역별 차이는 뚜렷하다. 서울은 69.2%(강남 90.4%, 강북 45.2%) 상승한 반면, 지방은 게걸음을 쳤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한국의 집값 상승률이 선진국들의 절반에 못 미쳤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교묘한 마법을 경계해야 한다. 버블론자 중에는 외국의 전국 주택가격과 한국의 강남3구 아파트값 상승률을 비교하는 경우가 흔하다. 공포심을 불어넣기 위한 통계왜곡이나 다름없다.



거품 붕괴가 현실화되려면 금융위기라는 충분조건도 필요하다. 주택가격 하락이 금융부실을 낳고, 금융위기가 다시 주택 투매를 부르는 악순환이 빚어져야 한다. 버블 붕괴가 일어난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연결고리다. 버블 당시 일본의 부동산담보인정비율(LTV)은 무려 120%. 미국도 90%였다. 주택값 하락이 곧바로 금융위기로 전염돼 재앙을 낳았다. 반면 한국은 수도권의 경우 LTV를 50%로 제한하고 있다. 투기지역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40%로 묶고 있다. 집값이 웬만큼 떨어져도 가계 파산이나 금융회사의 부실화 가능성은 낮다.



물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유동성이 넘쳐나고 시중금리가 바닥인데도 아파트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일부 지역 아파트값은 소득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품이 붕괴된다’는 묵시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건강한 청신호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두 달 연속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도권과 중대형 아파트값은 떨어지지만 전국 주택가격은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국민은행). 전국 땅값도 1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국토해양부). 전국 주택의 3%에 불과한 강남 아파트의 움직임으로 전체를 재단할 수는 없다. 재건축 아파트와 급매물 위주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레 거품이 제거되는 ‘아름다운 조정’이 아닐까 싶다.



아파트값 하락으로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가구가 적지 않다. “오를 때는 100%, 내릴 때는 1%”라며 험한 말을 하는 버블론자들의 심정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버블 붕괴는 모두에게 재앙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수많은 집이 차압되고 강제저축을 강요받는 미국의 풍경은 비극적이다. 다행히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물 조짐이다. 지금이야말로 연착륙을 시도할 만한 타이밍이다.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을 낮추면서 펀드·주식·채권 등으로 자산 증식 수단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고정금리형 대출 비중이 큰 나라일수록 집값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통계로 확인된다. 현재 90%를 넘는 우리의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비중도 낮춰야 한다. “거품을 붕괴시키자”며 저주를 퍼부을 때가 아니다. 국토해양부가 “거품은 없다”고 빡빡 우길 일도 아니다.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생산적인 토론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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