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김정일 방중, ‘천안함 외교’ 능력 묻고 있다

중앙일보 2010.05.07 19:08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닷새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어제 북한으로 돌아갔다. 전용열차와 최고급 승용차 편으로 김 위원장이 단둥에서 베이징까지 중국 북동부 지역을 누비는 동안 우리 정부는 넋 놓고 바라만 봐야 했다. 김 위원장이 압록강을 넘기 사흘 전 상하이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중국은 우리에게 귀띔조차 해주지 않았다. 천안함 침몰로 국민 감정이 가뜩이나 격앙돼 있는 이 시기에 김 위원장을 초청한 데 대해 중국은 “주권에 속하는 내정 문제”라고 반박했다. 북·중 간 혈맹적 특수관계 앞에서 주로 경제에 기반한 한·중 관계의 현실적 한계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닷새였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에 앞서 중국 정부가 우리 측에 김 위원장 방중(訪中) 결과를 알려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게 한·중 관계의 현주소다. 김 위원장 방중으로 분명해진 것은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일방적 기대는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적 규범에 바탕을 둔 합리적 설득으로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면 오산(誤算)일 수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천안함과 6자회담의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졌다. 천안함 문제가 본격적인 외교의 차원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고의 북한 연루설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언론 보도이며 추측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조사가 끝나지 않은 현 단계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천안함 외교’에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 내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6자회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은 유관 당사국과 함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6자회담 복귀 의사 표시로 보긴 어렵지만 중국이 이를 근거로 6자회담 재개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북·중과 한·미 간 대립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천안함 조사가 6자회담 재개보다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달 중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 소행으로 결론을 내리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을 제시하지 못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천안함이 동북아의 이슈라면 북한핵은 ‘핵 없는 세상’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게 글로벌 이슈다. 미국이 천안함과 6자회담 분리론에 동조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 방중으로 외교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지만 과연 이 정부가 그런 외교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조사한다고 했으니 이를 ‘주시’하겠다고 후 주석이 말한 것을 ‘평가’한다고 아전인수(我田引水)하고, 엄중한 시기에 주중 한국대사는 임지를 비우고,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훈계’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교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천안함 외교’라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이 정부가 풀 수 있는지 김 위원장의 방중은 묻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