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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기 닥치거나 미래 불안할 때 대중은 지도자 찾아

중앙일보 2010.05.07 16:00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지난해와 올해 우리는 네 번의 큰 장례를 치렀습니다. 김수환 전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교황장, 국민장, 국장처럼 장례 형식이 거창해 큰 장례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언에 따라 소박하게 치러진 법정 스님의 장례도 큰 장례지요.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다 다른 것이어서 온 국민이 똑같은 맘으로 슬퍼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하면 ‘온 나라가 슬퍼했다’고 할 만합니다. 죽음은 정파나 종교의 높은 벽도 한순간에 쉬 낮춰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분들의 죽음을 그토록 크게 슬퍼했을까요? 아마도 ‘지도자’들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박성민의 지도자 크기가 나라 크기다

이상한 일 아닙니까? 디지털 혁명 덕에 그토록 원했던 자유와 권력을 드디어 갖게 된 역사적 순간에 왜 대중은 ‘지도자’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그것은 이 시대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이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거의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는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의 미래는 왜 이렇게 불확실한 걸까요?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도 천안함의 침몰을 막지 못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정보를 갖고 있는 최강국 미국도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합니다. 고성능 컴퓨터와 천재적 분석가들이 그토록 많은데도 금융위기는 왜 막을 수 없을까요? 기술과 과학의 발달도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세대는 새로운 기술이 반갑지 않습니다.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익살처럼 서른다섯 살 이후에 나온 기술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대중은 이런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락’을 즐기게 된다고 예측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려는 복고도 그런 심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겠지요. 텐트 치고 야외 취침하는 ‘1박2일’이나 농가 체험을 하는 ‘패밀리가 떴다’, 혹은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무한 도전’의 큰 성공도 그런 정서를 반영한 것일 테죠. 제주도의 올레나 지리산의 둘레도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옛 추억으로의 여행이겠죠.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대중은 열광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젊은이들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합니다. 디지털 혁명을 이끄는 엔지니어들이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엄청난 부를 쌓은 사업가들의 성공담이 언론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온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좋아하거나 신뢰할 수는 있어도 존경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존경받지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존경은 자기를 위해 열심히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예가 아닙니다. 존경은 타인을 위해 희생과 헌신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런 지도자는 종교와 정치에서 찾기가 쉽습니다. 요즘은 온 국민이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정치에서 지도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정치인 중 ‘지도자’라 할 만한 정치인이 있습니까?



높은 지위, 권력, 대중적 인기가 저절로 지도자를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대개의 정치인은 단지 권력과 자리를 탐할 뿐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밝혀주지도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정당정치가 붕괴되는데도 한마디 하는 정치인이 없습니다. ‘엿장수 맘대로’ 공천을 해도 끼리끼리 좋은 게 좋은 겁니다. 철학과 신념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치권에는 ‘평론가’ ‘만담가’ ‘투사’ ‘연예인’ ‘관료’만 넘쳐납니다. ‘무엇을 할까’보다는 ‘무엇이 될까’에 더 관심 있는 정치인이 너무 많습니다.



국가에 위기가 닥치거나 미래가 불안할 때, 대중은 지도자를 찾게 됩니다. 처칠, 드골, 대처, 레이건, 덩샤오핑 같은 지도자들이 그렇게 등장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도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이미지를 갖지 않고는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자 우리에겐 과연 그런 지도자가 있는지 다음주부터 탐구 여정을 시작해 볼까요.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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