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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벌리힐스 맘 대치동 엄마들과 똑같다

중앙일보 2010.05.07 15:19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동연]
미국의 부촌인 베벌리힐스. 여기서도 가장 비싸다는 베벌리파크엔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저택이 있다. 이 집에 얼마 전 한 사립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모였다. 이 학교엔 스탤론의 아이 말고도 배우 샤론 스톤과 리얼리티쇼 ‘닥터 90201’로 유명해진 성형외과 의사 로버트 레이 같은 걸출한 할리우드 스타의 자녀가 많이 다닌다.


그 힘센 람보도 그 못된 교도관도 자녀 입시 정글에선 땀 뻘뻘 흘리죠

미국으로 유학 오는 한국 아이들이 늘자 LA는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학교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서울의 대치동 뺨치는 베벌리힐스의 교육 열기를 들어 보려고 당시 스탤론 집의 모임에 참가했던 에마 윌리엄스 부부와 지난달 28일 저녁을 먹었다. 에마의 남편은 유명 배우다. 한국에서도 히트를 쳤던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주인공 스코필드(일명 석호필)를 괴롭힌 악덕 교도관 브래드 벨릭으로 출연한 웨이드 윌리엄스가 그의 신랑이다.



“그 학교에 60명이 원서를 넣었는데 우리 딸을 포함해 4명만 붙었어요, 글쎄.” 에마가 입을 열었다. 스탤론의 딸도 합격했다. 한 학년 정원은 22명뿐인데 소속 유치원생과 교직원 등에게 우선권을 주고, 외부 신입생은 4명만 뽑았다. 에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블랙 프라이데이(검은 금요일)에 합격 통지서를 받는 순간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



스탤론 부부와 세 딸 ⓒGetty images
베벌리힐스 인근의 사립 초등학교들은 3월 말 봄방학을 앞둔 금요일에 일제히 합격 통지서를 보낸다. 그러나 입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불합격’ 딱지를 받는 가정이 많다. 이 때문에 베벌리힐스에선 우울한 금요일, 곧 블랙 프라이데이로 봄을 맞는다. 요즘 유명한 사립초등학교 입학 경쟁률이 5대 1을 넘는다는 서울 못지않게 베벌리힐스도 입시로 들썩이는 것이다.



에마가 자랑하듯 말했다. “봉투가 얇으면 ‘불합격’ 그리고 두꺼우면 ‘합격’이에요. 불합격 봉투엔 ‘유감입니다. 경쟁이 치열했습니다’라고 쓰인 종이 한 장만 달랑 들어 있어요. 합격 봉투엔 등록금이며 기부금·자원봉사 스케줄 등이 있어 두껍죠.”



에마는 2008년 텍사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왔다. 남편의 촬영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외동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였다. 에마도 다른 베벌리힐스 엄마들처럼 입시판에 뛰어들었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사립학교는 초등학교라도 학비가 연간 2만 달러(약 2200만원)를 넘는다.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공립학교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



공교육이 문제다. “코네티컷주 같은 곳이면 공립학교도 괜찮아요. 하지만 LA는….” 에마는 말을 끊었다. 사실 캘리포니아주는 1960년대까지 전국 최고의 공립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50개 주에서 48등이다. 전문가들은 78년 예산을 대폭 깎은 게 공교육 몰락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당시 정부의 예산 삭감은 세금 부담을 줄였기에 인기가 좋았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80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학부모들에겐 공교육의 질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에마는 이사 온 뒤 ‘입시 작전’에 돌입했다. LA는 사립 초등학교 들어가기가 대학보다 힘들다는 소리에 마음을 굳혔다. “불안한 마음에 아동심리학자와 교육 컨설턴트를 고용했어요.” 심리학자에겐 500달러를 내고 아이의 언어·수리 능력을 분석한 10쪽짜리 보고서를 받았다. 이런 걸 내면 입학에 도움이 된다. 학교 고르는 것도 교육 컨설턴트가 도왔다. 비용은 300달러. 컨설턴트들은 사립학교의 정보와 특징을 꿰차고 있다. LA의 영화배우와 스포츠맨 같은 스타들이 주된 고객이다. 학교의 입학사정관과 친분이 있는 컨설턴트는 ‘로비스트’ 역할도 한다. 에마는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사립학교 6곳에 지원해 원하던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한인 마켓에서 사온 김치를 먹던 남편 웨이드 윌리엄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물었다. “아무리 입학사정관이라도 그렇지. 여섯 살짜리를 보고 구분이 되나. 한국 사립학교는 어떻게 학생을 뽑아요?” 미국에선 학생을 뽑을 때 학부모를 함께 인터뷰한다. 그 때문에 학부모가 ‘학교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왜 이 학교가 자녀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생각해 간다. 할아버지의 직업까지 묻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계속 볼멘소리를 했다. “제 아버지와 어머니요? 모두 사립학교를 나와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어요. 이게 딸아이 합격에 도움이 됐으려나. 아무튼 드라마 캐스팅을 위해 여러 번 인터뷰를 했지만 가장 긴장됐던 인터뷰가 뭔지 알아요? 바로 이번 딸의 초등학교 입학 인터뷰였어요.”



밤이 깊어지면서 그의 말은 각을 세워갔다. “사립학교 학생들은 세상의 99%와 다르게 살아요. 그게 그렇게 좋을까.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스코필드도 공립학교를 나왔잖아요.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초등학교부터 사립을 보내면 대학까지 학비가 얼마야.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히트작에 한 번 더 출연해야 할 텐데. 한국에서 광고나 하나 받아주쇼.”





J칵테일>> 베벌리힐스


자료: 구글
베벌리힐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서부 로스앤젤레스 서쪽에 있는 도시다. 인구는 3만5000명.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가 가까이 있어 유명 영화배우나 사업가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호화로운 고급 주택단지가 형성됐다. 미국에서 평균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의 하나다.



2007년에 360만 달러(약 40억원)까지 치솟았던 평균 집값은 금융위기 이후 떨어져 현재 287만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구당 평균 소득도 11만 달러에 이르러 ‘억대 소득자’가 수두룩하다. 인기 드라마 ‘베벌리힐스 아이들’의 원제목인 ‘90210’는 이곳의 우편번호(zip code)다. 명품 브랜드 부티크와 고급 식당이 늘어선 로데오 드라이브가 유명하다.



멋진 거리 풍경 덕분에 할리우드의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많이 등장한다.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의 배경이 된 베벌리-윌셔 호텔이 대표적이다. 스타들의 호화주택을 구경하거나 최신 유행상품을 쇼핑하려는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서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도 자리매김됐다.





배우 윌리엄스 아내의 하루


오전 8시 사립 초등학교에 아이 데려다 주기



8시30분‘엄마 반장(Room Mom)’인 제니퍼 스탤론(실베스터 스탤론 아내) 집에서 학부모 모임. 자녀들 교육법, 진학 정보 등 교환



11시 집에서 휴식, 여가 및 점심



오후 2시30분 교장·교사와 학부모 상담



3시30분 학교에서 아이 데려오기



4시 아이 댄스학원 보내기



5시30분 집에서 언어 과목 과외시키기



이후 자녀와의 독서 및 취미 독려



LA중앙일보=김기정 기자 kijungkim@koreadaily.com

일러스트=김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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