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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겁 없는 여기자 마카오를 가다

중앙일보 2010.05.07 15:12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지난달 초 김정남을 만나기 위해 마카오에 갔다. 국내 언론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김정남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 말이다. 시도를 감행한 단초는 두 가지였다. 석 달 전 김정남이 마카오의 한 바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이 하나다. 한국인들이 아는 체하자 김정남 쪽에서 합석을 제의해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남쪽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면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이나 호텔 앞에서 기다리는 외신 기자들에게 유창한 영어로 답변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침 또 하나의 소식이 마카오에서 날아들었다. “3월 31일 오후 3시 MGM그랜드 카지노 앞에서 김정남과 마주쳤다”는 교민의 제보였다. 바로 짐을 꾸렸다. 한양이 아닌 마카오에서 김 서방 찾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김정남 “형님, 잘하셨어요 … 역시 집 사는 게 최고죠”

#카지노와 김정남



‘김정남 추적자’ 박현영의 마카오 루트
①김정남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
②김정남이 한때 소유했던 아파트
③김정남의 부인이 다니던 호텔 헬스클럽
④최근 김정남이 목격된 MGM그랜드 카지노
⑤김정남이 들른다는 윈 카지노
⑥김정남의 아들이 재학 중인 국제학교
⑦콜로안 해안가에 있는 별장
마카오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VVIP실에 가끔 온다는 윈(Wynn) 카지노로 달려갔다. 내부 안내도를 살펴보니 일반인용 카지노가 16곳, VIP 카지노가 12곳 있었다. VIP 카지노는 통 크게 베팅하는 꾼들이 모이는 곳. 일반 카지노의 칩은 10홍콩달러(약 1500원)에서 시작해 200~300홍콩달러(3만~4만5000원쯤)까지 가는데, VIP실은 칩 하나가 1만 홍콩달러(약 150만원)다. 그가 나타난다는 VVIP 카지노는 안내도에도 표시가 없었다. 수소문해 보니 호텔 24층에 있었다. 거금을 가져오는 고객이 프라이빗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독채다. 카지노 직원은 “최소 300만 홍콩달러(4억3000만원) 이상을 가져와야 방을 내준다”고 귀띔했다.



현지 카지노업계엔 김정남이 리스보아 카지노에 지분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퍼져 있다. 리스보아는 마카오 도박왕 스탠리 호(89)가 반 세기 전 세운 카지노다. 카지노업계 관계자는 “리스보아에서 정켓(카지노 모객 사업)을 하는데, 실질적인 운영은 중국인 사장을 내세워 한다고 현지인들은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직 카지노업자는 “그가 뭐가 아쉬워 카지노 정켓을 하겠느냐”며 이 소문을 부인했다.



수년 전 김정남과 함께 카지노에서 게임을 했다는 교민 A씨는 “도박 매너가 깔끔했다”고 기억한다. “게임에 죽자 살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즐기는 모습이었다. 딜러나 다른 손님에게 시비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었다. 여유 있고, 영리하며,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MGM그랜드 카지노 앞 대로 한가운데에는 보도블록이 깔린 교통섬이 있다. 지난 3월 말 김정남과 여성 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목격된 곳이다. 목격자는 “큰 키에 세련된 차림을 한 미모의 여성은 부인인 것 같고 평범한 차림새 여성은 경호원이나 도우미로 보였다”고 말했다.



#소탈한 황태자



마카오에 거주하는 한인은 200명쯤 된다. 취재 중 만난 한인들 중 10여 명이 김정남을 만난 적이 있었다. 대체적인 인물평은 “예의가 깍듯하고 소탈한 태도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은근히 카리스마가 있다”는 얘기였다. 김정남은 2~3년 전만 해도 교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밥값과 술값은 거의 그가 냈다. 도박으로 돈을 잃고 오갈 데 없는 한국 관광객들의 끼니를 챙겨준 적도 있다고 한다. 교민들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경호원 없이 소탈하게 다니는 그의 모습을 기억했다. 교민 B씨는 “식당도 가리지 않고 마바리(일반인용 카지노)에서도 게임을 할 정도로 격식을 안 따졌다. 그런 실리적인 모습을 보고 ‘반은 중국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B씨에 따르면 김정남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이른, 1990년대 초반부터 마카오에서 살았다. 올해 39세인 김정남이 20~30대를 모두 마카오에서 보냈다는 얘기다. 김정남은 중국어와 광둥어, 영어·불어·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현지인 C씨는 “3년 전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를 만났는데 줄곧 중국어와 영어로 말해 중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이가 더 많은 B씨를 김정남은 ‘형님’이라고 불렀다. 알고 지낸 지 한참이 지난 뒤 그의 신분을 알게 된 B씨가 “보통 사람이 아니시던데…”라고 말을 건넸더니 김정남이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한번 형이면 형이고, 동생이면 동생이지”라고 넘겼다고 한다. 남한 말씨를 쓴다는 이도 있고, 북한 말씨를 들었다는 이도 있다. 경우에 따라 남북한 말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가’ ‘한성식당’ 같은 시내 한식당에 들러 삼겹살과 김치찌개, 소주를 즐겨 먹었다. 요리를 시키지 않고 김치·콩나물 같은 기본 반찬만 놓고 소주를 마시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밤늦게 한식당에 찾아와 문을 닫고 밤새도록 소주를 마셨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장면·짬뽕·탕수육을 주 메뉴로 하는 한국식 중화요리점 ‘강남홍’에도 자주 들렀다. 교민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지고 북한 핵실험이 강행된 후 발길이 뜸해졌다”고 전한다.



#부동산과 김정남



C씨는 친구 10여 명과 함께 김정남이 별장에서 연 와인 파티에 초대받았다. “해변가 고급 주택가에 자리 잡은 집이었는데 내부는 이탈리아풍 앤틱 가구로 꾸며져 있었다. 가족 넷이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둔, 여느 가정집 분위기였다.”



주말 아침, 마카오 남부 콜로안의 해변가에 있는 주택단지를 찾아갔다. 남중국해를 바라보며 언덕을 따라 줄지어 수십 채의 집이 들어선 별장촌이다. 간혹 포르셰 카레라, 아우디 TT, BMW X5 같은 고급 자동차들이 단지 안으로 들어올 뿐 걸어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집은 바닷가 바로 앞줄에 있었다. 1층은 주차장, 2층부터 4층까지 거실·주방·침실이 있고, 옥상은 테라스인 타운하우스다. 출입문은 잠겨 있고, 커튼은 닫혀 있고, 인기척은 없었다.



교민들은 김정남이 이 밖에도 마카오 여러 곳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거주했던 (또는 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 두 곳을 물어 물어 찾아갔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16층짜리 아파트의 경비원은 기자가 보여준 김정남의 사진을 보고 “몇 년 전 일본·중국 기자들이 매일같이 몰려와 몇 날 며칠 진을 치고, 건물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주민들 불편이 많았다”고 말했다. 교민 B씨는 “김정남은 부동산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92년에 이미 시내 중심가에 아파트를 갖고 있었고, 마카오 그랑프리 자동차 대회가 열리는 도로에 접한 6층짜리 아파트에 살기도 했다”고 말했다. B씨가 집을 장만했다는 얘기에 김정남은 “형님, 잘하셨어요. 역시 집 사는 게 최고죠”라고 했다고 한다. 부동산은 종종 둘 사이의 화제가 됐고, 김정남은 아파트를 사고파는 문제를 B씨와 논의하기도 했다.



#비보이가 된 ‘인민공화국’의 종손



김정남의 장남 (15)은 마카오의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학교에는 40여 개국 학생 300여 명이 다닌다. 한국 학생도 있다. 건물을 덮은 대형 유리창엔 재학생들의 국적대로 국기가 내걸렸다. 맨 위에 북한 인공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붙어 있다. 한 교민은 “수업이 모두 영어로 이뤄지기 때문에 남북한 아이들도 영어로 대화한다”고 말했다. 김군은 준수한 외모에 공부도 잘 하는 데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또래 10대 아이들처럼 그도 춤과 음악에 관심이 많다.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취재원은 “비보이 춤을 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는데, 팝핀(온몸의 근육을 퉁기며 추는 춤)까지 제법 할 정도로 잘 춘다”고 전했다.





J칵테일>> 현장에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쿵쿵쿵.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졌다. 뒤통수 너머로 자꾸 고개가 돌아갔다.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북한 요원들에게 납치라도 되면…’.



지난달 마카오 남부의 건물 옥상. 건너편 김정남의 빌라를 카메라에 담는 20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다. ‘아무리 미운 털이 박혔다 해도 공화국 지도자의 장남 아닌가. 북한 경호원들이 집 주변에 진을 치고 있진 않을까’. 김의 동선을 따라 추적망을 좁힐수록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특수요원이라면 여기자 한 명쯤이야 쥐도 새도 모르게 해코지할 수도 있지 않나.



 마카오를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타서야 비로소 홀가분해진 마음.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며칠 전 신문 1면 제목에 다시 스트레스가 도졌다. ‘황장엽 암살조 체포’. 동료들과 저녁을 먹다 농담처럼 얘기가 오갔다. “밤길에 뒤를 조심해….”



지금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의 베이징 방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더 김정남을 만나고 싶다. 아무래도 다시 마카오행 출장 짐을 쌀 것 같다.



마카오=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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