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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앙드레 김의 특별한 만남 ‘윤정희’

중앙일보 2010.05.07 15:00 주말섹션 5면 지면보기
샹들리에와 조각상으로 장식된 앙드레 김 아틀리에는 늘 화사하다. 이날 그곳이 더욱 더 화사해졌다. 48년 옷 만든 디자이너와 44년 연기한 배우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엇보다 화려하고 고왔다. 거기에 20년 취재한 기자는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박종근 기자]
한국의 대표적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이 J를 위해 특별한 만남을 ‘디자인’합니다. 영화 ‘시’로 16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배우 윤정희씨를 만났습니다. 앙드레 김은 때로는 다정한 선배로 덕담을 했고, 때로는 ‘기자’로 예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2시간이 넘도록 끝날 줄 몰랐습니다.


“끼 물려받았죠 … 실종 아버지 찾고보니 몽마르트르 노숙자와 와인을”

시간:2010년 5월 3일 잔뜩 찌푸린 오후

장소:서울 신사동 앙드레 김 아틀리에

등장인물:앙드레 김, 윤정희



앙드레 김(이하 김):아, 오셨어요?



윤정희(이하 윤):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김:너무 오랜만이에요.



윤:(영화 ‘詩’) 시사회 때 고마웠어요. 꽃다발도 주시고.



김:그날 감동적이었어요. 사람도 많이 오고. 평이 좋죠?



윤:네, 선생님 상하이 패션쇼도 너무 좋았어요. 반응이 대단했죠?



김:항상 변하지 않는 그 아름다움을 지켜주세요. 정말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전설적 미인이세요.



윤:이창동 감독님이 그러더라고요. 이 주름살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라고요.(웃음)



김:이 감독님이 엄하지만 사람은 좋지요?



윤:어머, 하나도 엄하지 않으세요.



김:무섭게 생겼는데….



윤:어머, 왜 그러세요? 너무 좋으신 분이세요.



김:(화제를 돌리며) 어머니는 어디 사세요? 정말 미인이세요. 구중궁궐에 사는 왕비 같은 이미지. 이당(以堂) 김은호 선생의 미인도에 나오는 미인 같은 분이세요. 게다가 너무 헌신적인….



윤:(웃음)



김:데뷔는 몇 년도였지요?



윤:1966년 가을에 ‘청춘극장’ 촬영 들어가서 67년 1월 1일에 국제극장에서 개봉했어요.



김:맞아요. 그때 어머니하고 같이 뵌 거 같아요. 파리에 간 것은 언제지요?



윤:74년이었어요.



김:그럼 7년 만에 그만뒀어요?



윤:네, 7년 동안 280편 정도 찍었죠.(웃음)



김:유학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윤:아뇨, 저는 데뷔 때부터 5년만 배우 하고 유학가겠다고 했었어요.



김:남편 백건우씨는 어디서 만났어요?



윤:뮌헨에서였어요. 오페라하우스 계단에서. 서로 배우인지, 피아니스트인지 모르고 만났죠. 그이는 미국에서 한국 영화 거의 못 봤고, 나도 막 데뷔한 피아니스트를 알 리 없었죠. 두 번째 만남은 파리에서였어요. 우연히 소르본 대학 다닐 때 친구들하고 중국 레스토랑에 갔는데 남편이 조각가 문신씨하고 들어오더라고요.



김:윤정희씨가 훌륭하다고 느낀 점이 있어요. 어려운 클래식을, 전문적 지식과 깊은 이해 없이는, 끝없는 노력 없이는 오, 엔드리스(endless)…. 이해하기 어려운 클래식 하는 남편을 사랑해 주시고, 내조해 주셔서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만든….



윤:저는 남편을 너무 존경해요. 연습이 끝나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박수를 쳐요. 음악인한테 인정받는 음악인이라는 거죠.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클래식을 들으며 공부했어요. 카세트로 녹음해서 들으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김:클래식은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너무 어려운 분야인데. 그렇죠?



윤:우리는 그래서 (둘 다 클래식을 너무 사랑해서) 너무 부자예요. 남편은 80개 협주곡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평생 새로운 것 연주하고 좋은 친구들이 많고…. 부자가 아닐 수 없죠.



김:두 분의 결혼생활을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라고 많은 사람이 부러워해요. 두 사람 모두 행복하게 살면서 세계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축하드립니다.



윤:다른 욕심이 없어서지요. 일 욕심은 앙드레 김 선생님처럼 많지만 다른 욕심은 없으니 편안할 수 있는 거죠.



김:배우가 되실 생각은 어떻게 했어요?



윤:아버님의 끼를 물려받았나 봐요. 일본대 법대를 나오셨는데 일본 배우들하고 찍은 사진을 봤어요. 그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나 봐요.



김:아버님요?



윤:아버님께서 정말 멋쟁이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글로벌하셨던…. 외국 사람들이 부르기 쉬워야 한다고 제 이름을 ‘미자’라 지으셨잖아요(그녀의 본명은 손미자다).



김:대단한 미남이셨던 거 같아요.



윤:사교성도 뛰어나셨어요. 파리에 놀러오시면 프랑스어도 못하시면서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셨어요. 한 번은 아버지가 행방불명돼 난리가 났는데, 알고 보니 몽마르트르 언덕의 벤치에 앉아 노숙자들하고 와인을 마시고 계시더라고요.



김:영화배우가 되겠다니 좋아하셨겠어요.



윤:네, 많이 격려해 주셨죠. 신부님한테도 허락받았어요.



김:오우, 파더(Father)! 김수환 추기경님도 각별히 친하셨지요?



윤:네, 파리에 오시면 저희 집에 모셔 식사를 대접할 정도였지요. 그 분들 모습을 보며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돼야겠다고 다짐했었죠. 저는 구십 살까지 배우 할 건데 그때까지 그 마음 변하지 않을 거예요.



김:파리 생활이 얼마나 로맨틱할지 상상이 돼요. 쿠킹(cooking)은 주로 누가 하세요?



윤:저희들이 직접 하죠. 우리는 가정부를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김:파트타임으로도요?



윤:그럼요. 우리가 다 할 수 있는데 왜 가정부를 써요?



김:맞아요.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일 수 있죠.



윤:우리는 이사할 때 아파트 벽지도 다 우리가 발랐어요.



김:쿠킹은?



윤:반반씩 해요. 한국 음식은 주로 제가 하고, 이탈리아·프랑스·중국 요리는 주로 남편이 해요.



김:음식도 예술적으로 하실 거 같아요.



윤:즉흥적인 요리를 잘하죠. 있는 재료를 가지고… 둘 다 시장 보는 것도 좋아하고. 한 동네에서 30년쯤 살다 보니 상인들이 다 알아봐요. 저희들이 좋아하는 거 알고, “오늘 감이 좋다” “갈치가 싱싱하다”고 권하기도 해요.



김:시장도 가족적이군요.



윤:네, 아파트 이웃들도 너무 좋아요. 연주 여행을 떠나서 한동안 안 보이면 한국에 사는 내 동생한테 e-메일을 보내요. 그러면 동생이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팩스를 보내줘요.



김:한국 영화인들은 자주 만나세요?



윤:신성일, 신영균, 남궁원씨 같은 분들하고 형제같이 지내요. 어제도 신영균씨가 축하 저녁을 사주셨어요. 제가 후배들을 불렀죠. 하루 전에 얘기했는데도 송강호, 전도연 같은 후배들이 기꺼이 나와주더라고요.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님도… 늦게까지 재미있게 놀았어요.



김:어제 장동건-고소영 결혼식 가서 김 위원장님 만났는데 일찍 가시더니 그 모임에 가시느라 그랬군요.



윤:신성일씨하고는 99번 영화를 같이 찍었고, 이제 100번째 영화를 기다리고 있고….



김:신성일씨가 나쁜 일 당했을 때 용기 있게 한 말이 화제가 됐었어요(그녀는 2006년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수감 중인 신성일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윤:신성일씨가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는 성격이거든요.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한마디 했지요.



기자:(끼어들며) 오늘 윤정희씨가 멋진 개량 한복을 입고 오셨는데 전문가로서 평을 한번 해주시죠.



윤:어머, 이거 개량 한복 아니에요. 파리에서 산 거예요. 제가 하얀 옷을 즐겨 입는데 앙드레 김 선생님이 늘 하얀 옷을 입으셔서 오늘은 제가 다른 색을 입고 왔어요.



김:윤정희씨는 신인 때부터 자연스러운 멋이 우러나는 의상을 연출했어요. 검은 망토를 멋지게 입으셨던 거 아직도 기억나요. 요즘처럼 인공적인 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그런 멋이죠.



윤:앙드레 김 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환상적이고 아름답죠. 늘 앞서 가시고, 그래서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으시는… 한마디로 존경합니다.



김:칸 영화제 개막은 언제지요?



윤:개막은 12일, 폐막은 23일이에요.



김:좋은 결과 기대해요. 매일 신문 볼게요.



윤:감사합니다.





J칵테일>> 배우 윤정희


그녀를 처음 본 건 딱 10년 전 이맘때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도빌 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그녀를 인터뷰했었다. 초등학교 때 주간지 센터폴드 모델이었던 그녀를 보고 ‘어쩌면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까’ 콩당콩당 가슴 뛰었었다. 2000년 봄 그녀 눈가의 잔주름을 봤을 때 ‘선녀도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구나’ 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칠 무렵 ‘이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도 있구나’ 또 한번 놀라야 했다. 그후 다시 그녀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또 놀랐다. 함께 자리했던 유학생이 왕년의 수퍼스타 윤정희를 모르는 것이었다. 2010년 봄 그녀는 다시 놀라움과 함께 우리 곁에 다가왔다. 10년 전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말이다. ‘시’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늘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배우 윤정희는 여우주연상으로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할지 모르겠다.





글=이훈범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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