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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CEO가 찾은 성공 스토리] 상추 팔아 연 100억원, 류근모 장안농장 사장

중앙일보 2010.05.07 14:58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류근모 장안농장 사장이 브로콜리를 들고 작업장에 서 있다. 그의 뒤에 보이는 것처럼 이 회사의 작업장에는 각종 미술품이 걸려 있다. 그가 들고 있는 브로콜리는 약간 흠집이 있는 채소 8종을 함께 포장해 정상 제품의 30% 가격에 제공하는 ‘못난이 유기농’이다. [박종근 기자]
1997년 가을 어느 날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30대 후반의 한 남성이 경운기에 가재도구를 싣고 아내와 아이 둘과 함께 농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빗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울에서 꽃 농장을 하다 망해 쫓기다시피 처가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신용불량자였던 이 남성은 그러나 힘들게 빌린 300만원으로 상추 농사를 시작해 13년 만에 연매출 100억원에 달하는 유기농 쌈채소 기업을 일구었다. 장안농장 류근모(50) 사장이 주인공이다.


섞어 심기 농법 개발, 채소끼리도 경쟁 붙였다

그는 창업한 후 매년 매출을 전년보다 두 배 이상씩 늘려왔다. 요즘 그가 하루에 생산하는 쌈채소는 10만 명분(1인당 200g 기준)에 달한다. 1년이면 3650만 명의 한국인이 장안농장 쌈채소를 먹는 셈이다. 기자는 지난달 말 충주 장안농장을 찾았다. 그의 사무실은 여러 가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책 가운데 『수학 정석』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을 왜 읽느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재미있던데요.” 그는 1년에 책을 300권가량 읽는다고 했다. “공부한 덕에 오늘날의 장안농장을 일구었어요. 농부가 공부하면 상추가 잘 자랍니다.”



그와 함께 43만㎡(13만 평)에 달하는 농장을 둘러본 뒤 제품을 분류·포장하는 작업장을 찾았다. 입구에는 ‘장안농장’이 아닌 ‘장안 갤러리’라고 씌어 있었다. “사훈이 ‘예술과 열정’이에요. 우리는 스스로 농업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는 조만간 자신의 직책을 ‘대표’가 아닌 ‘예술 총감독’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작업장 안에는 다양한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저희 상추는 맛이 달라요. 처음엔 쌉싸래하고 중간엔 담백해요. 그리고 마지막엔 단맛이 연하게 지속되지요.” 주변 사람이 부르는 그의 별명은 럭비공이라고 했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냐고 묻자 그는 미소만 지었다.






류 사장의 3가지 성공 비결



상추를 팔아서 연매출 100억원을 낼 정도면 쌀로 치면 1000억원, 고기로 치면 5000억원쯤 되는 셈인데요. ‘유기농 상추 CEO’ 류근모 장안농장 사장의 인생역전 이야기의 경영 비법은 무엇일까요.



류 사장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편견과의 싸움’. “그건 불가능해”라는 포기의 편견, “농업은 한물간 사업이야”라는 절망의 편견과 13년 동안 싸워왔다는 겁니다.



그는 어느 날 대형 마트에 들렀습니다. 식품매장 앞에는 주부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요. 브로콜리를 사려는 주부들이었습니다. 브로콜리마다 무게가 달랐기 때문에 일일이 무게를 재고 바코드를 붙이느라 줄이 길게 늘어진 것이었죠. 그의 머릿속에는 번개처럼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브로콜리를 일반 공산품처럼 표준화해서 팔 수는 없을까?’ 농장으로 돌아와 아이디어를 내놓자 직원은 하나같이 반대했습니다. “채소가 공산품도 아니고, 규격에 맞추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류 사장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이게 쉬운 일이었으면 남들이 벌써 했지, 나에게까지 기회가 왔겠느냐는 것이죠. 어려운 일일수록 경쟁의 강도는 약하고, 성공의 과실은 오히려 큰 법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고객이 구매하는 브로콜리의 평균 무게를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평균 무게보다 무거운 브로콜리는 조금씩 잘라내고, 잘라낸 조각은 따로 모아서 알뜰형 상품으로 내놓았죠. 표준화에도 성공하고 동시에 기존에 없던 신상품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소비자뿐 아니라 대형 마트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류 사장이 밝히는 또 다른 성공 비결은 바로 ‘공부’입니다. ‘농부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실제로 그는 책이나 신문·TV에서 접한 각종 지식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사업에 접목시켰습니다. ‘섞어 심기’ 농법이 바로 공부의 결과물입니다.



어느 날 그는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봤습니다. 오징어를 운반하는 사람이 수조 안에 천적 물고기 한두 마리를 함께 넣는다는 기사였죠. 천적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오징어는 늘 긴장을 하고 몸을 움직이고, 그 덕분에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례를 쌈 채소 사업에 접목했습니다. 보통 유기농 채소 재배 농가에서는 채소를 종류별로 구분해서 심지요. 상추는 상추대로 심고, 케일은 케일대로 심습니다. 관리가 편하고 수확하기도 쉽기 때문이죠. 하지만 류 사장은 ‘오징어 기사’를 응용해 채소끼리 경쟁을 시켜 보았습니다. 두세 가지 쌈 채소를 한곳에 심어본 것이죠. 가장자리에는 상추를 심고 중앙에는 케일을 심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채소끼리 좋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두 채소 모두 더욱 건강해지고 병충해에도 강해졌습니다.



류 사장은 또 채소에 ‘보약’을 먹였습니다. 그는 특히 ‘땅심’(땅의 기운과 활력)을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대신할 수 있는 건 바로 땅심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채소도 토양이 기름져야 해충이 꼬이지 않고 빨리 성장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맥반석·옥·숯·한약재·참나무·쌀겨·옥수수가루까지 땅에 뿌렸습니다.



이런 류 사장도 사업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품이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팔 데가 없어서 고생하는 중소기업처럼, 그도 판로를 뚫기가 어려웠습니다. 쌈 채소 유기농법에 자신감이 생기자 그는 가장 싱싱하고 품질이 좋은 상추 20상자를 싣고 도매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도매상에게 가격을 어느 정도 쳐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상자에 700원 합시다.” “7000원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700원이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농약을 쳐서 기른 옆집 할머니는 한 상자에 1200원을 받았다는 겁니다.



‘상추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가격에는 도저히 못 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요. 어떻게 팔까 고민하던 그에게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공짜로 나눠주면 홍보가 되겠다’. 한달음에 고속도로 휴게소로 갔습니다. 중산층 이상 되는 사람을 공략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중형차마다 찾아가서 상추를 맛보라며 창문을 두드렸지요. 어땠을까요.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덜컥 상추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판로 때문에 고민이 쌓여가던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친척이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상추를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는 겁니다. “우리 아파트 주민에게 직거래로 팔아보면 어떻겠는가.” 그 친척의 도움으로 류 사장은 아파트 부녀회와 연결되어 직거래로 상추를 팔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 후 그는 서울에서도 중산층이 산다는 강남의 아파트들을 돌면서 이른바 ‘부녀회장 마케팅’을 펼친 겁니다. 그것도 무작정 파는 게 아니라 일단 한번 먹어보라고 시식용 상추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추를 먹어본 고객이 입소문을 내면서 채소 직거래는 점점 확대돼 갔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류 사장은 신뢰야말로 사업의 근본임을 깊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신뢰 가 가장 큰 장사꾼이다. 낯선 사람이 공짜 선물을 주면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그러나 아는 사이라면 공짜는 마음의 선물이 된다.” 류 사장이 밝히는 뚝심과 신뢰의 경영 노하우입니다.



김진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서울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같은 대학 농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유통, 농식품 산업 등을 연구하고 있다.





충주=김창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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