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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스크린 속 리더십] 인빅터스 (invictus)

중앙일보 2010.05.07 14:53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영화 속 넬슨 만델라 대통령(모건 프리먼)이 인종 화합 상징인 남아공팀의 럭비 월드컵 우승컵을 치켜든 주장 프랑수아(맷 데이먼)를 축하해 주고 있다. [중앙포토]
‘인빅터스(invictus)’는 ‘정복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시인 윌리엄 E 헨리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정복당하지 않는 내 영혼으로 인해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 신이 어떤 신이 되었든(I thank whatever Gods may be/For my unconquerable soul)’


만델라가 팀 주장에게 물었다
“너의 리더십 철학은 뭐지? 모범도 좋지만 영감을 줘라”

그 시는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만델라로 하여금 27년간의 감옥생활을 견디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아공 럭비 대표팀 스프링복스를 오히려 인종 화합의 상징으로 바꾸기 위해 1년 후(1995년) 남아공에서 열리는 럭비 월드컵을 주목했다. 여러 가지 오해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스프링복스가 이 대회에서 우승하도록 계속 독려하고 지원한다. 만델라는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리더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더 이상 리더로서 적합하지 않게 되는 거라네.” “당신들은 나를 지도자로 뽑았습니다. 당신들을 리드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만델라의 리더십은 우선 용서와 화해다. 1994년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동안 핍박받았던 흑인들은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백인들은 노심초사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요원들에게 무장투쟁을 독려하던 만델라였지만 이제는 이전의 적이요, 원수였던 백인들을 끌어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백인 일색인 대통령 집무실 직원들에게 원하다면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 흑인 핵심 경호원들이 백인 경호원들을 배제하자고 했지만 만델라는 도리어 그들의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백인 세력의 프락치로 암약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받아들인 것이다. 한 사람 외엔 모두 백인인 스프링복스 선수들이 가난한 흑인촌 아이들에게 럭비를 가르치는 장면이 감동적인 것은 그런 리더십의 귀한 결실이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이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섬기는 게 만델라의 또 다른 리더십이다. 스프링복스 팀의 주장 프랑수아를 대통령 집무실로 초대한 만델라는 손수 차를 따라 찻잔을 쟁반째 들어 건넨다. 프랑수아는 황송하여 당황한다. 스프링복스 팀을 독려하러 갈 때도 혹시 연습에 방해되지 않을까 조심하고,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도록 주의한다. 어디까지나 팀 주장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배려한다. 럭비 월드컵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 엘리스 파크 스타디움에 입장할 때 만델라는 선수들이 걸어간 그 길을 따라 등번호 6번 자국팀 유니폼을 입고 한 사람의 선수처럼 들어선다. 6번은 팀 주장의 등번호로 주장에게 리더십을 이양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럭비 경기의 규칙은 앞으로 공을 패스해서는 안 되고 뒤로나 옆으로만 해야 한다. 성급하게 전면으로 달려나가려는 유혹을 참아내야 하는 경기다. 리더십에도 이런 유혹을 극복해야 하는 면이 있다. 그런 리더십은 섬기는 마음과 태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감을 주어 고무하는 리더십도 돋보인다. 만델라가 팀 주장에게 묻는다. “너의 리더십 철학은 뭐지?” 주장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만델라는 모범도 좋지만 무엇보다 팀원들에게 영감을 주어 고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위대해질 수 있도록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고무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말일세.”



만델라는 이때 헨리의 시에서 ‘고무’라는 단어를 찾았다고 고백하고 나중에 그 시 전문을 주장에게 건넨다. 그리고 ‘오지시키릴리 아프리카(Ozisikilili Africa, 아프리카에 신의 가호를)’와 같은 노래의 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주장은 이 시와 노래로 팀원들을 고무하고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해 낸다. ‘고무(鼓舞)’는 원래 북을 쳐서 춤추게 한다는 뜻이다. 북을 어떻게 치느냐 하는 것이 리더십의 관건인 셈이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만델라는 그야말로 만달라(mandala), 즉 통합의 상징으로서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조성기 소설가·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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