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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인터뷰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j에게 침묵을 깨다

중앙일보 2010.05.07 14:52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과연 김수현(사진)이다. 그답게 ‘사고’를 쳤다. 그의 드라마 SBS ‘인생은 아름다워’(연출 정을영, 토·일 밤 10시)가 극중 동성애 설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극의 틀 안에 뜨거운 사회적 이슈들을 버무려온 그다운 일이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60대 주부의 ‘가출’을 그렸던 그가 이번에는 재혼 가정의 장남(송창의)을 게이 의사로 설정했다. 동성 연인인 사진작가(이상우)와 스킨십을 하고 ‘결혼’을 고민하는 ‘리얼’ 게이다.


감당할 수 있는 한 자식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태는 … 내가 보기엔 꾀부리는 거예요

대중문화 속 동성애 코드가 날로 진화 중이지만 이 같은 파격 설정은 처음이다. 최근 유행하는 ‘꽃미남 게이 로맨스’물처럼 동성애를 이성애자의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 중 게이가 있다면?”에서 출발한다.



인터넷에는 논란이 거세다. 주말 가족극에서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는 남남커플이 부담스럽다,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다. 물론 응원이 더 많다. 동성애자를 들러리 세우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화로 만난 그는 “욕먹을 각오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동성애, 성애로만 보지 말라”



“논란을 예상했죠. 근데 동성애라는 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저 나와 다를 뿐인데, 그걸 기피하고 매도하는 건 아주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죠.” 방송사에 항의전화가 걸려오기도 하지만 대체적인 반응은 우호적이다. “나도 깜짝 놀랐어요. 사실 더 세게 욕먹을 줄 알았거든. 그래서 조금 편하게 쓰고 있어요. 물론 아직 갑갑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2003년 ‘완전한 사랑’에 주인공의 친구로 게이 캐릭터를 등장시킨 적이 있다. 실제 커밍아웃 후 연예계에서 퇴출됐던 홍석천을 캐스팅했다.



“동성애 하면 무조건 성애로 보잖아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 징그럽다 이런 식으로. 근데 그게 아녜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내가 이 민감한 소재에 덤벼들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극 중 이들은 엘리트 훈남 커플이다. “캐스팅할 때 두 사람이 무조건 보기 좋아야 한다, 깨끗하고 멀쩡한 청년이어야 한다, 이렇게 주문했어요. 그래야 거북함 없이 동성애를 보게 되고, 편견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최근 트위터에 열심인 그에게 한 팔로어는 동성애자로서 가슴 아픈 사연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마음 짠해서 금방 답글 못 썼어요.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사회 분위기도 차츰 나아질 거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죄가 아닙니다. 자신을 아끼세요”라고 답했다.



"가족끼리만 잘 지내도 세상은 천국”



‘인생은 아름다워’는 ‘목욕탕집 남자들’ ‘엄마가 뿔났다’를 잇는 김수현표 가족극이다. “드라마 보면서 좋은 풍광을 보면 더 좋겠다 싶어” 제주도를 배경으로 했다. 4대 12명이 한 울타리에 모여 사는 이들에게는 여러 삶의 문제가 녹아 있다. 마누라를 5명이나 갈아치우고 늘그막에 본처를 찾아온 바람둥이 할아버지 최정훈, 전처 소생 아들에게 ‘계모 콤플렉스’를 느끼는 재혼 엄마 김해숙, 신세대 아내와 공처가 커플 우희진 이민우 등이다.



이 중 맞벌이 주부 우희진은 원치 않은 둘째 임신 후 낙태를 결심했다 마음을 돌린다. “전 감당할 수 있는 한 자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맞벌이하면서 힘들고 엄마가 될 사람의 권리도 있지만, 요즘 세태는 이걸 너무 쉽고 간단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내가 보기엔 꾀부리는 거예요. 단지 내가 괴롭다는 이유지.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다, 이기심이죠.”



현실 속 가족은 날로 위기이고 해체인데, 대가족 드라마를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나하고 혈연관계인 사람들만 잘 뭉쳐 지내면, 집집이, 이 사회가 다 천국처럼 괜찮아지지 않겠어요? 가정이 사회의 출발이니까. 물론 가족이 남보다 더 웬수 같고 짐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디 버려집디까? 버려지지 않는 게 가족이죠.”



“내 주제는 사람”



김수현은 이 시대 최고의 작가이자 스토리텔러다. 살아 있는 캐릭터, 공감 가능한 현실적 갈등,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40년 넘게 폭발적 인기를 끌어온 비결이다. 최근 강세인 ‘막장’ 코드 없이도 늘 시청률 상위를 휩쓴다.



“막장요? 작가나 PD들이 시청률이나 시청자 핑계를 대는데, 참 무책임한 얘기죠. 방송하는 사람은 드라마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할 책임이 있어요. ” 그가 생각하는, 성공하는 드라마의 요건은 “머리나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쓴 드라마”다. “인물들을 내놓으면 거의 모든 인물이 나예요. 내가 이 사람 저 사람의 마음이 돼서 그 사람들을 쓰는 거죠. 근데 머리와 생각으로 쓰면 인물들이 겉돌고, 보는 사람 가슴이 두드려지지 않아. 드라마 쓰면서 얻은 결론은 잘나 봤자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는 건데, 그래서 아마 보는 분들도 편안할 거예요. 극에 자기를 투사하기 좋고, 이해하기도 쉽고.”



“지금껏 쓴 인물들을 합하면 여단은 되고도 남는데, 인물 유형이 몇 개 되지 않거든요. 그러니 내가 얼마나 죽을 지경이겠수. 골이 빠개져 작업할 때마다 넌덜머리 난다니까.”(웃음)



대가족 설정, 가부장에 대한 존중 등으로 그에게는 ‘보수주의자’란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내가 가족주의로 몰리는데 그게 보수주의니까, 어차피 트렌디도 못 쓰고 보수꼴통이 내 숙명이겠지.(하하) 근데 가족이 다 함께 살면 가족주의인가? 그래요? 가족 안에서 개인이 마모돼 있는 게 아닌데?”



“이번엔 좀 밝고 유쾌하게 쓰고 싶었다”는 그는 엔딩마다 인물들이 넘어지는 ‘꽈당 엔딩’으로도 화제다. “끝나면서 픽픽 웃게 하고 싶었는데, 남 넘어지는 구경이 재밌잖아요. 그래서 자빠뜨린 거예요. 근데 연기자들이 다칠까 그게 걱정이네요.”



죄의식 없는 바람둥이 할아버지(최정훈), 자기중심적인 무개념 대표 (장미희) 등 밉상 캐릭터들도 정감 있게 그리는 것이 김수현 드라마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전 사람으로 숭한(흉한) 캐릭터는 싫어요. 대신 어떤 사람이든지 아무리 미운 사람도 보다 보면 이해되고 귀엽고, 시청자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으면 해요. 결국 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에요.”



양성희 기자



J칵테일>> 트위터에 빠진 김수현



그는 트위터에 한창 재미를 붙였다. 팔로어가 만 명이 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가 된다. “호기심으로 발 담갔다가 빼지도 못하고. 나를 향해 말해주는 사람 모르는 척 ‘생깔(무시할)’ 수도 없어서 일과 끝나면 열심히 답 달아주고 그러죠. 컴퓨터 켜면 팔로어가 샤샤삭 늘어서 이게 뭐냐, 깜짝 놀란다니까요. 아휴, 늙은이가 호기심 때문에 망한 거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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