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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빌 클린턴·반기문도 단골, 세계 10대 셰프 장 조지 폰게리히텐

중앙일보 2010.05.07 14:46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일상의 재료로 새로운 걸 창조하는 장 조지 폰게리히텐이 자신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만든 에그 캐비어를 보여주고 있다. [정경민 특파원]
인기 ‘미드’인 ‘프렌즈’ 시즌5를 보면 주인공 챈들러가 여자친구 모니카와 사귄 지 10개월 된 기념으로 ‘장 조지(Jean Georges)’에 예약했다며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수천 개 레스토랑 중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 5곳 중 하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이 단골이다. 이 레스토랑의 요리사 장 조지 폰게리히텐은 프랑스 요리에 동양의 풍미를 가미해 세계 10대 셰프의 반열에 올랐다. 요리사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27개 레스토랑을 직·간접으로 운영하는 기업인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블로그를 보면 그의 리더십에 대한 직원들의 칭찬이 대단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사람이다. 큰 레스토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팀이다. 리더는 굿 리스너(good listener·경청자)가 돼야 한다. 그래야 나의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그의 리더십이 궁금했다. 레스토랑 장 조지를 찾아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을 만났다.


“모든 게 사람 … 리더는 굿 리스너 돼야”

장 조지 외에도 뉴욕에만 그의 식당이 페리 스트리트(Perry St.), 마쓰겐(Matsugen), 조조(JoJo), 스파이스마켓(Spice Market) 등 9개다. 메뉴도 다르고 가격대도 다르다. 마쓰겐 같은 경우는 자신의 주특기가 아닌 소바와 스시 전문점이다. 그는 뉴욕에서만 10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2만5000명 이상의 고객을 맞고, 하루 예약전화만 3000통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그를 “자존심 강한 예술가이자 이윤에 목마른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 같은 스태미나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본능을 좇고 탐닉할 것을 찾아야 한다. 뉴욕에서는 매일 아침 새로운 레스토랑이 문을 연다. 저마다 더 색다르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도 몸이 열 개도 아닌데.



“뉴욕에 있는 9개만 직접 운영한다. 다른 레스토랑은 현지 파트너와 합작했다. 나는 현지 경제 여건을 잘 모르지만 요리에 대해선 잘 안다. 인테리어에서 레시피는 물론 셰프 교육까지 내가 직접 한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석탄 사업을 해왔다. 석탄으로 오븐을 데운다고 치면 석탄과 요리가 아주 맞지 않는 궁합은 아니다.



“부모님은 내가 엔지니어가 돼 가업을 잇길 원했다. 그러나 나는 석탄보다 요리가 좋았다. 늘 어머니가 일하는 부엌에서 놀았다. 16세 되던 해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프랑스 알자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슐랭 별 3개 레스토랑에 가봤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진 식사는 내 시야를 확 틔어줬다. 평생 요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지니어 공부를 때려치우고 스트라스부르 호텔학교 요리과에 들어갔다.”



그에게 영감을 준 멘토가 있을 법했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물론 롤모델은 어머니였고… 어린 나를 먹여준 사람이니까(웃음). 직업적으로는 1973년 폴 보퀴제와 일하면서 재료와 양념, 모든 걸 그에게 배웠다. 닭털 뽑는 것까지. 아시아에서도 많은 셰프를 만났다. 20대의 대부분(1980~85년)을 보낸 태국·홍콩·싱가포르에서 오늘의 나를 만든 동양의 맛을 배울 수 있었다.”



그의 요리는 동양 풍미가 강하다. 보퀴제로 대표되는 70년대 프랑스 요리 혁명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1세대의 영향과 아시아 경험이 어우러진 것이다.



“정통 프랑스 요리는 육류 비중이 높고 기름기가 많다. 이와 달리 동양에선 채소·과일을 많이 쓴다. 내 요리는 두 가지를 조화시킨 것이다. 예컨대 푸아 그라(거위 간 요리)는 프랑스 요리지만 거기에 망고와 생강 소스를 얹으니 산뜻하면서도 환상적인 맛이 났다. 간장과 버터를 함께 끓여 나만의 소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동서양의 맛을 조화시키면 무궁무진한 요리가 나온다. 내 요리 사전엔 국적이 없다. 단지 좋은 요리와 나쁜 요리가 있을 뿐이다.”



훌륭한 멘토를 만날 수 있는 비결이 따로 있을까.



“오픈 마인드가 돼야 한다. 인생은 끝없이 배우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만난 스시 셰프한테 비로소 제대로 먹는 법을 배웠다. 스시를 먹은 지 십 수년이 됐는데 말이다. 멘토는 어디에나 있다. 올해 아홉 살짜리 딸이 있는데, 그 애한테도 배운다.”



물론 부인한테서도 배운다. 그의 아내 마자(Marja)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의 아내 사랑은 한국 음식 사랑으로 이어졌다. 이들 부부는 김장도 담가 먹는다고 했다.



“결혼 초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썩는 냄새가 났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 냉장고 문을 빠끔히 열고 뭐가 있나 봤다. 바로 김치였다. 처음 아내의 김치는 좀 맵고 짰다. 그런데 지금은 간이 딱 맞다. 난 이젠 김치 없인 못 산다. 동양 음식이 대부분 그렇지만 한국 음식은 특히 중독성이 강한 것 같다. 사골 곰탕도 한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다.”



한식이 왜 그리 좋은지 물었다.



“나의 음식 철학은 마지막 숟가락까지 첫술의 느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한식은 그런 면에서 살아 있는 음식이다. 유럽 음식은 내 입맛엔 밋밋하다. 한식 먹을 땐 “와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식은 이미 뉴욕에서 인기 있는 요리다. 나도 한식당에 자주 간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j 칵테일>> 부인은 한국계





장 조지 폰게리히텐은 아내(사진 왼쪽)와 함께 11일 방한한다. 이번 여행은 한국계 부인 마자의 뿌리 찾기 여정이기도 하다. 마자는 1976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귀국한 뒤 세 살배기 딸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미국인으로 자랐지만 그녀는 뿌리를 잊지 않았다. 한국말을 배우려 애썼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한국 음식을 익혔다. 그녀의 한국 사랑은 남편의 한국 음식 사랑으로 이어졌다. 폰게리히텐은 “아내 덕에 한국 음식의 열렬한 팬이 됐는데 이번 기회에 한국의 맛을 제대로 느껴 보려 한다. 재래시장과 맛집도 순례하며 여러 한국 음식을 배워 올 계획”이라고 말한다.



마자는 결혼 전에 영화배우 겸 모델이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자란 아내는 99년 뉴욕으로 왔다. 영화배우였던 아내가 사진가 친구의 모델이 됐다. 우연히 사진을 봤는데 눈에 확 띄었다. 그런데 6개월 뒤 그녀가 레스토랑을 찾았다. 한눈에 알아보고 사랑에 빠졌다.”



이때부터 사귀기 시작한 이 커플은 2005년 결혼식을 올렸다. 마자는 20세가 되면서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행히 양부모가 입양 때 기록을 모두 보관하고 있어 17년 만에 생모를 찾았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뉴욕 브루클린에 살고 있었다. 입양시킨 딸을 찾아 미국에 왔던 거다. 그 후 아내는 한국을 10여 차례 방문하며 고향도 다녀오고 친척도 만났다.”



미국 공영방송 PBS는 마자의 뿌리 찾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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