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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관람 갑자기 취소 … 환송행사 없이 서둘러 출발

중앙일보 2010.05.07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탑승한 열차가 6일 베이징역을 빠져 나와 옛 성문의 하나인 둥볜먼(東便門) 앞을 지 나고 있다. 김 위원장 일행은 이날 오후 4시25분(현지시간) 베이징역을 출발했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의 허를 찌르며 이뤄졌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6일 마무리됐다. 김 위원장과 중국 수뇌부 간 논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가 이번 방중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 베이징 떠나는 날 무슨 일 있었나

3일 새벽 압록강철교를 건너 중국 방문을 시작했던 김 위원장은 다롄(大連)·톈진(天津)을 거쳐 베이징(北京)에서 1박2일간 일정을 소화하고 6일 오후 4시25분(현지시간) 베이징역에서 전용열차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7일 오전 단둥·신의주를 지나 평양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돼 그가 이동한 거리는 약 270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앞선 네 차례 방중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곤란한 처지에서 중국을 방문했다”며 “그러나 그의 이번 방문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는지는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가무극 ‘홍루몽’ 공연에는 김정일 위원장과 중국 최고지도부가 참석하려고 예정됐으나 막판에 갑자기 일정이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홍루몽 공연장으로 지정된 베이징방송국(BTV) 대극장의 한 관계자는 “당초 공연에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오후 7시에 공연장에 도착하기로 예정돼 있었다”며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고 지도자 참석 없이 공연은 7시30분에 예정대로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홍루몽은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문학 작품으로 김일성이 가극화하고 김 위원장 본인이 개작을 지시해 북·중 우호의 상징으로 간주돼 왔다. 그 때문에 홍루몽 관람이 불발에 그치고, 김 위원장이 만찬도 하지 않은 채 귀국길에 올라 그의 방중 성과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방중 손익계산서=김 위원장은 두 차례의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 화폐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난, 후계자 선정과 건강 문제 등이 걸려있는 데다 천안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상황에서 방중길에 올랐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에서 중국을 찾은 셈이다.



고립된 김 위원장은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라고 판단한 중국으로 다급하게 달려갔다. 그는 5일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장장 4시간30분 동안 정상회담과 만찬을 계속했다. 이어 6일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다른 고위층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런 기회를 빌려 김 위원장은 북·중 관계 강화 필요성을 역설하고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을 게 분명하다. 또 천안함 침몰 사건과 북한이 무관하다는 주장을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이런 김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중국 최고 지도부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 외신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이 북한에 있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는 보도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는 “언론의 추측 보도”라고 일축,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럼에도 중국이 통 크게 북한의 손을 들어주길 기대했던 김 위원장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어떤 제안과 빅딜이 이뤄졌는지도 확실치 않다. 한국과의 경제적 이해 관계가 나날이 긴밀해지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을 편들기는 힘들어진 탓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중국의 경제 지원 등 김 위원장이 챙긴 선물 보따리가 공개돼야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번 방문이 절반의 성공으로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



◆5일간 2700㎞ 강행군=김 위원장은 4박5일간 열차와 승용차를 포함해 약 2700㎞를 주파했다. 건강한 몸으로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일정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 때문에 한 외교관은 “2008년 8월에 뇌질환으로 쓰러졌던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며 “김 위원장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노출시킨 것도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김 위원장은 중국 북방의 경제 중심도시인 다롄과 톈진을 잇따라 방문함으로써 성공적인 개혁·개방의 경험을 다시 배울 기회로 삼았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김정일 방중 나흘째 표정



방중 나흘째를 맞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6일 베이징(北京)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의 오찬회동, 연구단지 시찰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10분 숙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을 나섰다. 김 위원장을 태운 차량 행렬은 이날 오전 9시30분쯤 바다링 고속도로를 타고 댜오위타이에서 북쪽으로 31㎞ 떨어진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 내 생명과학원에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50분가량 연구원을 시찰한 뒤 오전 10시50분 숙소인 댜오위타이로 돌아왔다. 중국 당국이 김 위원장의 일정과 동선에 대해선 극비에 부쳤지만 그의 움직임은 사실상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베이징 교통방송은 “창안(長安)대로 푸싱먼(復興門) 인근과 웨탄(月壇) 남북로가 임시 교통관제에 들어갔으니 주변을 운행 중인 차량들은 돌아가길 바란다”고 안내했다. 교통 관제가 일어나는 곳을 방송하면서 김 위원장 일행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곳을 알려준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과의 오찬 회동은 댜오위타이에서 열렸다. 앞서 오전 11시20분쯤 원 총리 등 중국 지도부 인사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 행렬이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지도부 거처)에서 나와 댜오위타이로 들어갔다. 김 위원장과 원 총리 등은 40분가량 차를 마시며 환담한 뒤 오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찬은 통상 국빈급 오찬 시간보다 훨씬 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오찬을 마친 김 위원장은 숙소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뇌졸중을 앓았던 김 위원장이 베이징의 의료진으로부터 검진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의 방중 수행단 차량에 앰뷸런스가 포함돼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그의 건강 상태는 여전히 불안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오후 4시25분 베이징역에서 전용열차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김정일의 베이징역 출발 행사는 과거에 비춰볼 때 의전상 격에 맞지 않게 치러졌다고 베이징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일을 태운 차량이 역사에 들어간 지 불과 7~8분 만에 전용열차가 출발한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방중 때에는 자칭린 정협 주석(당시 권력서열 4위)이 기차 역에 나가서 20여 분간 환송 행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황급히 귀국길에 오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귀국 동선과 관련, 단둥(丹東) 현지 소식통은 “6일 오후부터 단둥 세관이 폐쇄됐다”며 “제3의 방문지를 찾지 않고 곧바로 7일 새벽에 압록강 철교를 넘을 공산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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