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레가 … 물속으로 풍덩

중앙일보 2010.05.07 00:57 종합 28면 지면보기
“발레만 잘하면 됐지, 무슨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도 아니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32)씨는 입을 실룩거렸다. 2주 전 상황을 기억하는 게 싫은 듯 보였다. 황씨는 발레 ‘심청’을 연습 중이었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몸부림을 쳤다고 했다. 왜 황씨는 토슈즈와 튀튀를 벗고 물로 뛰어들었을까.


디지털 옷 입은 발레 ‘심청’

물속이라 더 극적일까. 서로를 애타게 갈구하듯 손을 뻗는 심청(안지은)과 용왕(엄재용)의 모습은 한 편의 뮤직 비디오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24년 만의 업그레이드=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은 1986년 초연됐다. 효(孝)를 테마로 한 한국적 스토리에 서양의 발레를 입히자 큰 화제를 모았다. 해외 러브콜이 이어졌다. 한국 발레 사상 최초로 프랑스에 초청됐다. 뉴욕 링컨센터·워싱턴 케네디센터 등 10개국 40개 도시에서 150회 넘게 공연해왔다. 하지만 24년이 흐른 지금, 변화가 필요했다. 발레단은 ‘디지털 영상’을 도입했다. 실제 공연에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이나 용궁 장면 등을 영상으로 보여주면 극적 효과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달 18일 경기도 포천의 수중촬영전문 세트장. 아침 일찍부터 세 명의 무용수, 안지은(33)·황혜민·엄재용(31)씨가 몸을 풀었다. 촬영은 오전 8시 시작했다. 황씨는 다이빙대에 올라 5m 깊이의 물을 보자 바들바들 떨었다. 용기를 내 물에 뛰어들고도 숨을 오래 참지 못해 5초 만에 헐떡거리며 고개를 내밀어야 했다. 황씨는 “촬영이나 멋진 동작은 고사하고, 얼마나 오래 숨을 참는가를 시험한 극기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열 번 넘게 다이빙을 하고서야 물에 조금 익숙해졌다. 이번엔 동작이 버거웠다. 수압을 견뎌내며 다리를 뻗고 표정을 짓기란 평상시 연습보다 두 배 이상의 에너지를 요했다. 안씨는 “물에 뛰어들기 전 공포, 물속에서의 안간힘 등이 어쩌면 진짜 심청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촬영은 밤 9시까지 13시간의 강행군이었다. 체력은 바닥났지만, 남성이 여성을 드는 리프트 동작까지 소화할 수 있었다. 현재는 편집 등 후반 작업 중이다. 발레단 측은 “인당수에 뛰어드는 장면은 3분 정도로 표현되며, 용궁 장면은 영상을 마치 무대 세트처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무대의 확장=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47) 단장도 중년의 심청으로 카메오 출연한다. ‘심청’과 문 단장의 인연은 각별하다. 초연 당시 심청을 연기했고, 2001년엔 공연 도중 발목 부상이 악화돼, ‘심청’을 마지막으로 은퇴해야 했다. 문 단장은 “갑작스런 부상으로 그때 은퇴식도 못했다”며 “9년 만에 다시 서는 짧은 무대지만, 창피 안 당하려고 매일 연습실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장인주 이사장은 “20여년 전 발레 ‘심청’이 ‘한국적 발레’의 선두주자로 역할을 했다면, 2010년 ‘심청’은 ‘디지털화’라는 새 화두를 던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레 ‘심청’=24∼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8만·6만원, 3·4층 전석 1만원, 070-7124-1733.



최민우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