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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길을 따라서 <상> 바울, 그리스 신들과 맞서다

중앙일보 2010.05.07 00:55 종합 29면 지면보기
바울 당시 고린도는 부유한 도시였다. 왼쪽에 돌이 깔린 레가이온 길은 도시 중심부에서 항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뒤편 멀리 솟은 산(아크로 고린도) 꼭대기에 아프로디테 여신을 모셨던 신전이 보인다.
2000년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죽었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가 그토록 무기력한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았는지 말이다. 그의 제자들은 더했다. 예수가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도 제자(사도)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했다.


2000년 전 7만㎞를 걷고 걸었다, 신화의 땅에 복음 씨앗 뿌리려 …

그때만 해도 예수가 뿌린 말씀의 씨앗은 유대교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 유대인이었던 제자들은 예수 사후에도 여전히 유대교의 율법과 안식일을 지키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올렸다. 그러니 당시 예수의 가르침은 ‘변방의 가르침’에 불과했다.



그랬던 기독교가 어떻게 세계로 퍼져 갔을까. 예루살렘의 테두리를 벗어나 어떻게 로마로, 유럽으로 흘러 갔을까. 불과 2000년 만에 그리스도교(개신교+가톨릭)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로 성장했다. 신자 수만 무려 22억 명에 달한다. 그런 성장의 물꼬를 튼 이가 바로 사도 바울(바오로)이다. 터키의 안디옥 지역에 세운 개신교회 창립 10주년을 맞은 광림교회(담임 김정석 목사)의 성지순례 일정에 동행했다. 지난달 26일부터 열흘간 그리스와 터키를 오가며 ‘사도 바울의 전도지’를 훑었다. 그리고 거기서 바울을 만났다. 바울의 서신과 목숨을 건 여정, 그 너머에 그리스도가 있었다. 3회 시리즈로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목숨을 건 전도여행=지난달 27일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 곧장 그리스 아테네로 갔다. 비행 시간은 고작 1시간30분. 사도 바울은 이 길을 지팡이를 짚고서 걸어 갔다. 그가 걸었던 길만 무려 7만㎞에 달한다. 네 차례에 걸친 바울의 전도여행은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그런 바울을 묵상하며 아테네 공항에 내렸다.



아테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의 높다란 언덕에 세워진 거대한 신전이다. 2000년 전 바울도 이 신전과 마주했다. 바울이 넘어야 했던 거대한 산이기도 했다. 그 산의 이름은 ‘다신교(多神敎)’. 신화와 전설이 뒤얽힌 그리스의 종교였다. 그들 앞에서 바울은 ‘하나의 신(一神)’을 설파해야 했다.



오랜 세월 유대인은 메시아를 기다렸고, 지금도 기다리고, 앞으로도 기다릴 터이다. 그러나 범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그리스인에겐 메시아란 관념이 없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부활(아나스타시스)’이란 말을 수용할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희로애락이 넘실대는 신화,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중시했다. 파르테논 신전도 지혜의 신인 아테네 여신을 모셨던 곳이다. 신전 한가운데에는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아테네 여신의 석상(지금은 소실됨)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창과 방패를 든 여전사인 아테네 여신이 도시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설하는 바울의 이야기는 그저 ‘멀리서 날아온 이국의 종교’로 비칠 따름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에 올랐다. 아고라(광장)가 내려다 보였다. 거기서 바울은 에피쿠로스(쾌락주의) 학파나 스토아(금욕주의) 학파와 열띤 논쟁을 벌였다. 파르테논 신전 근처의 언덕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했다는 법정 터가 남아 있었다. 바울은 거기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는다.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은 금상, 은상,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은 바울을 철저히 외면했다. 결국 바울은 아테네 선교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기독교는 그리스의 국교가 됐다. 그리스인의 98%가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 기독교인이다. 바울은 그때 알았을까. 자신이 심은 씨앗이 수백 년, 수천 년이 넘어서야 열매가 맺힐 거란 사실을 말이다.



◆고린도에서 묻는 바울의 지혜=버스를 타고 고린도로 향했다.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진 2시간30분 거리였다. 고린도는 아테네·스파르타와 함께 그리스의 3대 도시국가였다. 바울 당시에는 거대한 무역도시였다. 고린도는 양쪽 겨드랑이에 커다란 항구를 끼고 있었다. 하나는 이오니아해, 또 하나는 에게해와 통했다. 그래서 성경에는 고린도가 사람이 몰리고, 상업이 성하고, 돈이 넘치고, 타락한 도시로 묘사돼 있다. 로마 시대에는 75만 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고린도는 달랐다. 붉은 개양귀비꽃이 여기저기 들판에 흐드러진, 오렌지 농사를 주로 짓는 소담한 농촌이었다. 고린도 역시 아테네와 비슷했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 위에 옛 신전이 있었다.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모신 곳이었다. 바울 당시, 이 신전에는 1000명이 넘는 여사제가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신을 모시는 몸으로 죄를 씻어주겠다며 거액을 받고 몸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고린도에 바울은 18개월간 머물렀다. 그리고 교회를 세웠다. 바울의 서간 중 가장 긴 편지가 바로 ‘고린도 전·후서’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았다는 얘기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유대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고린도의 들녘에 섰다. 바람이 불었다. 눈을 감았다. 그랬다. 오랫동안 바울은 고민했던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지혜인가. 나의 지혜인가, 세상의 지혜인가. 그도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 2000년 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바울은 밤을 새며 묵상을 했을 터다. 그리고 바울은 그 답을 길어 올렸다. 그는 먼저 보라고 했다. 나의 지혜,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음을 말이다. 그걸 깨우치라고 했다.



왜 그럴까. “나는 어리석다”“세상은 어리석다”는 걸 진정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나와 세상이 무너지는 법이다. 그렇게 나의 지혜, 세상의 지혜가 ‘우르르’ 무너지는 자리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썼던 편지의 수신인은 사실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이다. 아무리 첨단 기계와 문명과 통신이 발달해도 인간의 지혜, 인간의 삶은 결국 ‘오십 보 백 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지혜, 세상의 지혜를 통해서 삶의 해답, 인생의 대안을 찾으려 한다. 바울은 그 한계를 지적했던 것이다.



그리스 철학은 서양철학의 모태다. 그리스인의 지혜, 그리스인의 철학을 향한 바울의 일갈은 결국 서양철학을 향한 일침이기도 하다. 바울은 ‘나’가 무너진 자리에 그리스도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가 밀려온다고 했다. 이건 논리나 철학으로 뱉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자신의 지혜를 실제 허물었던 이들만이 던질 수 있는 소리다. 그곳으로 밀려오는 그리스도의 밀물, 하나님의 밀물을 체험한 자만이 토할 수 있는 살아서 꿈틀대는 소리다. 우리가 바울의 서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배를 타고 떠났던 겐그레아 항구로 갔다. 허름한 나룻배 한 척이 보였다. 바울도 저런 목선을 타고 에게해를 건넜을 것이다. 그런 바울을 좇아서 배를 탔다. 에게해는 짙디 짙은 코발트 빛이었다.



아테네·고린도(그리스)=글·사진 백성호 기자



◆사도 바울(바오로)=길리기아(지금은 터키 영토)의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 그리스 문화에서 교육을 받았고, 로마 시민권자였다. 생전의 예수를 만난 적은 없으나,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사도가 됐다. 열정적인 성격이었던 바울은 지금의 터키와 그리스,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했다. 변방에 머물던 예수의 가르침을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 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로마서·고린도서· 갈라디아서 등 교회에 보냈던 그의 서신은 신약성경에 수록돼 있다. 전승에 따르면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 박해 때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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