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가짜 서명’으로 더욱 얼룩진 주민소환제

중앙일보 2010.05.07 00:27 종합 38면 지면보기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선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됐다. 일부 주민이 제주 강정항에 민·군 복합항구를 건설하려는 중앙정부의 계획안을 김 지사가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청구했다. 투표율은 11%에 그쳐 자동 부결됐다. 20억원 가까운 세금 낭비, 20일간의 도지사 직무정지와 행정공백, 찬반으로 갈라진 주민의 갈등과 분열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주민소환제의 부작용을 거론할 때 단골로 인용되는 사례다. 그런데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제 본지 보도에 따르면 주민투표 청구인 수가 당초 크게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전체 서명인 중 무려 34%(2만5000여 명)가 무자격자거나 조작됐다. 2007년 7월에 있었던 김황식 하남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때도 비슷한 부정이 판쳤다. 선관위가 이들 ‘가짜 서명’을 걸러내고 청구인 수가 충족된 뒤 투표를 진행해 절차상 하자(瑕疵)는 없을 수 있다. 중앙선관위도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는 무효 서명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의사와 반(反)한다고 편법과 탈법을 동원한 비도덕적 행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특히 해군기지(제주), 광역화장장(화남) 같은 국책사업에 반대를 위한 인위적인 조작(造作)을 기도하고 민의(民意)를 왜곡하려는 일이 있어선 결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명의와 주민번호를 도용했다면 재발을 막고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조치해야 한다. 아울러 제도적 허점과 시행상 문제점을 드러낸 만큼 주민소환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 2007년 5월 시행된 이 제도는 주민들이 무능하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을 투표를 통해 해임하고 교체하라는 취지로 도입됐다. 2006년 출범한 민선 4기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47.8%인 110명이 비리와 위법 혐의로 기소됐건만 이들 중 누구 하나 주민소환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지역이기주의와 분열주의를 부추기는 이상한 제도로 변질된 느낌이다.



이제라도 주민소환 청구 사유를 직무유기·직권남용·법령위반 등으로 세밀화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해 보자. 주민소환제가 국가안보와 국책사업을 방해하는 수단이 돼선 곤란하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