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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대표 예비명창 “떳다 봐라 저 제비… ”

중앙일보 2010.05.07 00:10 11면 지면보기
지난달 17일 천안박물관에서 완창발표회를 가진 한유진양(왼쪽)이 흥보가를 부르고 있다. [김영복씨 제공]
“떳다 보아라. 저 제비가 둥그렇으 둥그렇으”


여중생 한유진 흥보가 완창

넓은 공연장에 힘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가냘픈 체구에서 이런 소리가 나니 믿기지 않는다.



지난달 17일 천안박물관에서 흥보가 완창발표회를 가졌던 한유진(13·천안여중2년)양의 ‘소리’다. 평소 말수가 적은 유진양이지만 무대만 올라가면 동네가 떠나갈 정도의 성량을 자랑한다.



유진양은 이날 3시간에 걸쳐 ‘흥보가’를 완창했다.(1부 이진용, 2부에 국악 신동으로 잘 알려진 유태평양 군이 고수로 나섰다.) 공연을 마친 그는 관객들의 갈채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런 무대는 흔히 보기 힘들다. 전국에서도 몇 안되지만 충청권에서 여중생이 판소리를 완창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긴 노랫말을 외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소리를 계속 낼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소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런 유진양과 판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유진양이 판소리를 처음 접한 건 유치원에 다닐 때다. 이 유치원에서 사물놀이와 판소리의 기본을 맛봤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없어졌다. 3년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세월이 흐르면서 판소리는 ‘남의 일’이 되는 듯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말. 학교에 방과 후 수업이 생겼다. 이때 국악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다시 판소리와의 연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후 천안시 북면 납안리 국악캠프에서 한 달 정도 테스트를 받았다. 이곳은 국악신동 유태평양의 아버지 유준열씨가 운영한다.



2006년. 초등학교 4학년 때인 이때 유준열씨와의 인연으로 판소리에 입문했다.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운 기간이 5년 남짓. 하지만 유진양은 타고난 판소리 성음과 재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유준열 원장은 “실력도 뛰어나지만 부족한 공력을 보완하기 위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 왔다”며 “충남을 대표하는 예비명창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했다.



뛰어난 재능에 부지런함을 녹였다. 일주일에 한번씩 받는 교육을 녹음하고 반복해서 듣는다. 들은 내용을 집에서 따라하고 또 따라한다. 평소 하루 한 시간 정도 소리를 내지만 완창회 공연 전에는 2-3시간씩 목청을 높였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3시간 완창 분량이면 80페이지 정도의 책을 외워야 한다고 한다.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진양조, 중모리 등 장단과 상황에 맞게 구사해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 힘들면 포기하고, 배우고 싶으면 배워라” 아버지 한웅섭씨가 국악캠프에서 테스트를 마쳤을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10살짜리 어린 소녀에게는 큰 선택, 갈림길의 순간이었다. 몇 년이 또 지났지만 그때만큼 중요한 선택의 기회는 없었다. 한양의 부모도 ‘어린 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숙제를 준 건 아닌지’ 고민되기도 했다. “계속 할께요” 유진양이 스스로 하겠다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힘들고 어렵지만 참아준 게 고맙다.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따라준 게 고맙다.” 아버지 한씨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가서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하기도 했다.



유진양은 판소리 중에서도 ‘여성적이며 슬픈 소리를 구사하는 서편제’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미산제(眉山制)가 그와 맞는다. 미산(眉山)은 명창 박초월 선생의 소리 내력을 말한다.



그래도 아직은 사춘기 소녀인가 보다. 소위 잘나가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도 듣고 따라하는 평범한 학생의 일상을 보낸단다.



유진양의 꿈은 또래의 아이들과 달리 야무지다. 어디로 어떻게 갈지 확실하다. 서울의 예술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대학에서 국악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김정규 기자



◆미산 박초월 선생= 1917년 전남 승주에서 태어나 십대에 남원의 김정문 선생에게 춘향가와 흥보가를 사사받으며 판소리에 입문했다. 송만갑 선생으로부터 적벽가와 수궁가를 사사받으며 타고난 성음으로 동서편의 소리를 넘나들며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여류 명창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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