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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9·11과 천안함

중앙일보 2010.04.20 19:15 종합 33면 지면보기
미국의 초당파 9·11 테러 조사위원회(9·11 위원회)가 첫 번째로 꼽은 교훈은 상상력(imagination)의 실패였다. 그다음 셋이 행정부의 정책·대처 능력·관리의 실패였다. 2004년 7월 최종 보고서를 통해서다. 보고서는 상상력 실패 부분에서 미국 사회 전체를 도마에 올렸다. “1990년대 미 국민은 안도와 만족감으로 냉전 붕괴를 축복했다. 안보 비용 절감에 따른 평화의 배당금을 즐기려 했다. 아프가니스탄(알카에다 은신처)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듯했다. 알카에다 요원에게 미국은 너무나 가까운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글로벌화됐다. 9·11 전 알카에다는 미국인 40여 명을 살해했다. 행정부는 그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첫 번째나 두 번째, 심지어 세 번째의 적으로 대처하려는 절박감이 없었다. 9·11 직전까지 테러리즘에 관한 어떤 여론조사도 없었다. 2000년 대선에서조차 테러리즘은 쟁점이 아니었다. 의회와 미디어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상상력은 관료주의에 걸맞은 재능이 아니다. 상상력의 연습을 일상화하고 심지어 관료화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가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내야 한다.”



보고서의 요체는 두 개다. “미국은 준비되지 않았다”, “9·11은 충격이지만 놀랄 일(surprise)이 아니다.” 비극은 상통하는가.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9·11 보고서를 들여다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이 북한 소행이라면 교훈은 9·11과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지구본을 한반도로 돌려보자.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서 서해로 방향을 튼 것은 90년대 말이다. 북한의 DMZ 도발은 우리 군의 화력에 막히기 일쑤였다. 북한군은 97년 7월 중동부 DMZ에서 박격포 사격 도발을 했다. 하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우리 측 피해는 거의 없었다. 북측 GP(전방초소)는 크게 부서지고 인명 피해가 났다. 재래식 전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교전이다. 그 이래 DMZ에서의 대규모 도발은 없었다. 우리 전방을 가보라. 초소는 첨단장비로 무장된 요새다.



북한은 서해로 전장(戰場)을 옮겼다. 해상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은 취약하다. 북한의 해안·육상 군기지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그 선 아래 우리의 백령도 등 5도가 있다. 면(面)을 점(點)으로 상대하는 선이다. 북한 해군의 주력은 서해에 집중돼 있다. 그 새 1, 2차 연평해전(1999, 2002년)과 대청해전(지난해)이 있었다. 우리 해군은 2차 연평해전에서만 큰 피해를 보았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과 당시의 어설픈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북한군은 이렇게 판단했을지 모른다. ‘서해에서 함정 대 함정 간 정규전으론 안 된다. 함정으로 NLL 무력화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는 어렵다-’. 당시 우리 정부는 서해를 새로운 전장이 아닌 어장 문제로 접근했다.



이 큰 흐름에 두 가지를 더해 보자. 하나는 군부 인사다. 지난해 2월 김격식 총참모장이 서해 관할 4군단장에 보임됐다. 우리로 따지면 합참의장의 군단장 이동이다. 그의 총참모장 재임 중 남북 간에 교전은 없었다. 대청해전 후론 김명국 작전국장이 대장에서 상장으로 1계급 강등됐다. 긴장감이 흐르는 인사다. 다른 하나는 북한군 공식 입장이다. 대청해전 3일 만에 “서해 해상분계선을 지키기 위한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올 1월 NLL 아래 쪽으로 해상사격 구역을 설정하고 포사격을 가해왔다. 천안함이 북한 어뢰로 폭발했다면 우리는 그다음 수순을 읽지 못했다. 북한은 물속의 비정규전을 택했다. 우리는 단편적 정보·정황의 점들을 선으로 잇지 못했다. 9·11과 다를 게 없다.



9·11은 미국의 안보 패러다임을 바꿨다. 국토안보부가 탄생했다. 16개 정보기관을 통괄하는 국가정보국도 생겨났다. 47년 국가안보회의(NSC)·국방부·중앙정보국(CIA) 창설 이래의 변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식의 강력한 NSC 시스템 구축은 하나의 방안이 아닐까 싶다. 분단 상황 하의 안보 여건에 맞는 듯하다. 군과 국정원의 대북 정보 통합을 위해서도 그렇다. 지상군·공군 중심인 주한미군 전력의 변화를 미측에 요청해볼 수도 있겠다. 미 해군 전력을 전방 배치하는 방안이다. 마침 주한미군은 2010년대 말 평택으로 이전한다. 항구가 있는 곳이다. 미 이지스함의 기항은 서해의 더할 나위 없는 억지력이다. 천안함은 우리에게 새로운 안보의 틀과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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