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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중위로 6·25전쟁 참전한 글렌 페이지

중앙일보 2010.04.20 00:31 종합 35면 지면보기
“장군님(my general)!” 문을 들어선 올해 81세의 글렌 페이지(사진) 하와이대 명예교수가 연로한 한국 예비역 장성에게 거수 경례를 붙였다.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16일 방한한 그의 경례를 받은 백선엽 예비역 대장(90)도 힘차게 답례를 했다. 두 사람은 1950년 8월, 북한 김일성의 막바지 공세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경각에 걸렸던 낙동강 전선에서 만나 평양 진격과 중공군이 참전했던 운산 전투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백 장군은 국군 1사단 사단장으로, 글렌 페이지 교수는 그 밑에 배속됐던 미 10고사포단의 중위로 전선을 지켰다. 백 장군과 넉 달 동안 전선을 함께 누볐고, 노후에도 늘 연락을 유지했던 페이지 교수를 만나 백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페이지 교수는 저서 『비살생 정치학』으로 정치학계에서도 이름이 높다.


“백 장군, 선봉 전차 올라타고 평양 진격”

-백선엽 장군을 평가하자면.



“인간적이고, 친절하며, 부하를 참 아꼈던 장군이다. 나는 늘 백 장군의 사단본부에 미 고사포단 연락장교로 함께 있으면서 그를 지켜봤는데, 한 마디로 매우 열린 사람이다. 부대원과 늘 호흡을 함께했다. 강조할 것은 그가 매우 좋은 인격을 지닌 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늘 부하들을 격려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당시 미군 지휘부가 본 백선엽 사단장의 인상은.



“한결같다. 모든 장군과 지휘관이 백 장군에게는 같은 인상을 지니고 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 우선이고, 다른 많은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직업군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확고한 태도를 지녔다.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매슈 리지웨이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평을 빌리자면 ‘국가에 대한 충성, 개인으로서의 명예, 도덕적 용기, 부하들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 그리고 승리를 향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다.”



-작전 때 백 장군의 스타일은.



“전선에 직접 나섰다. 총알이 빗발치는 일선을 누비고 다녔다. 사단 지휘소(CP)에만 붙어 있지 않고 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부하들을 격려했다. 하루는 우리가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총알이 날아다니던 현장이었는데, 내가 겁이 나서 땅에 엎드려 꼼짝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엉덩이를 걷어찼다. 뒤돌아 보니까 백 사단장이었다. 웃는 얼굴로 ‘야, 이제 그만 나가야지. 언제까지 엎드려만 있을 거냐’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서 우리는 용기를 얻고는 했다.”



-평양 진격 때 기억나는 장면은.



“백 사단장이 돌격하는 미군 1번 전차에 올라타 있었다. 적으로부터 언제, 어느 방향에서 공격이 가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백 장군은 그럼에도 앞장을 섰다.”



-백 장군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나는 백 장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50년 10월 말 벌어진 중공군과의 운산 전투 때다. 중공군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우리 사단 본부에서는 참호를 파고서 적을 막을 준비에 바빴다. 백 사단장이 그러고 있는 내게 와서 ‘빨리 후퇴해. 어물쩍어물쩍 거릴 틈이 없다’고 명령했다. 우리가 떠나고 3분 뒤에 그 참호로 박격포탄이 떨어져 터지는 것을 봤다. 그가 나를 살려준 셈이다.”



-그 뒤로 어떤 관계를 유지했나.



“늘 관심을 보여줬다. 지난해 내가 80세 생일을 맞았는데, 백 장군이 카드를 보내왔다. 운산 전투 때의 사진과 함께였다. 부하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다시 느끼면서 감회에 젖었다. ”



글=유광종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글렌 페이지 교수=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를 거쳐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네소타대·프린스턴대·하와이대 교수를 지내다 92년 퇴직하고 하와이에서 세계비폭력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 경험 등을 바탕으로 폭력과 살생의 정치적 풍토를 총체적으로 비판, 검토하는 저서『비살생 정치학』을 펴냈다. 인간에게는 남을 해치지 않는 ‘비(非) 살생’의 잠재력이 내재돼 있다는 점을 전제로, 그를 통한 세계 평화를 이성적으로 전망하는 내용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자문교수로 와있는 동안 4·19와 5·16을 직접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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