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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브릭스 참여 적극 검토할 만하다

중앙일보 2010.04.20 00:15 종합 38면 지면보기
국가가 사람이라면 국가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독일어(der Staat), 프랑스어(l’<00E9>tat) 등 서양 언어에 따르면 국가는 남자다. 통념상 남자는 짝이 있어도 한눈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별이 남자인 국가가 기존 연합·동맹 관계를 넘어 새로이 연대할 대상을 물색해 온 게 국제관계의 역사다.



전 세계 차원에서 국가들의 ‘짝짓기’가 한창이다. 유럽연합(EU), 아프리카연합(AU), 중남미국가연합(UNASUR) 등 같은 지역끼리 뭉친다. 하지만 경제적인 공통 분모가 있어도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으로 이루어진 브릭스가 한 예다. 지난 15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제2차 정상회담을 개최한 브릭스는 선진국을 제외하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에서 1~4위다. 세계 인구의 40%, 세계 GDP의 15%를 각각 차지하며,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잠재적으로 미국의 단독 헤게모니를 위협할 수 있는 브릭스는 기본적으로 ‘반미(反美)’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이다. 지난해 6월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에서 브릭스는 ‘다극적 세계질서(multipolar world order)’의 추구를 선언했다. 미국의 ‘권위주의’에 대해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브릭스가 세계 자본주의의 전복을 꾀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금융 질서의 안정을 추구하며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친(親)자본주의적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브릭스 정상들은 신(新)세계질서 구축에 합의하고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에서 개도국의 발언권·투표권을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가가 대세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브릭스에 국제금융 질서를 바꿀 힘이 없다고 본다. 두 차례 공식적으로 모였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선언 내용이 모호하며 공통의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직 걸음마 단계인 브릭스에 대해 미국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 20개국(G20) 결성 자체가 브릭스 포위, 무력화 전략이라는 시각이 있다. 보수 이념을 표방하는 정책연구소인 미 헤리티지(Heritage)재단은 지난 16일 메모를 발표해 브릭스를 둘러싼 ‘신화’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브릭스가 미국을 압도한다는 것, 다극화된 세계가 국제 안보를 증진한다는 것 등이 모두 신화라는 것이다. 미국의 속내를 읽게 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메모의 마지막 문장이다. “미국민은 무역, 외교, 이란의 핵무기와 같은 사활적 이슈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무턱대고 양도할 수 없다.” 브릭스의 영향력이 증진되면 미국의 대응도 구체화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한국은 브릭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우선 브릭스가 국제금융 질서의 개혁을 요구할 예정인 11월 서울 G20 회의에서 외교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후 옵서버 자격 등 브릭스에 어떠한 형태로든 동참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브릭스의 개념을 처음 도출해 낸 골드먼삭스는 2007년 초 “브릭스에 한국을 포함해 브릭스(BRICKs)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브릭스가 확대될 경우 멕시코와 함께 거론되는 대상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한 통일에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브릭스는 통일 외교의 장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이 브릭스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설득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국과 미국 간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점에서 한국은 브릭스의 ‘반미’ 성향을 희석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에 주장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은 브릭스를 향한 미국과 서유럽의 의혹을 얼마간 불식시키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브릭스에 얘기할 수 있다.



개인 차원과 달리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국제사회에서 ‘외도’는 나쁜 게 아니다. 현재에 안주하기에는 국제사회의 짝짓기가 심상치 않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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