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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태국 민주당의 몰락

중앙일보 2010.04.20 00:15 종합 38면 지면보기
태국 민주당은 1946년 창당됐다. 쿠데타가 밥 먹듯 일어나는 태국에서 민주당은 반세기가 넘게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야권의 축이자 군정에 맞서온 용기 있는 영혼이었다. 추언 리빠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해 1992년 군정이 물러난 뒤 두 차례 집권했다. 수도 방콕의 중산층과 지식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런 민주당이 2001년 탁신 친나왓이 이끄는 타이락타이당에 패한 뒤 2005, 2007년 총선까지 남부지역을 근거로 한 지역당으로 쪼그라들었다.



탁신의 당이 2001, 2005년 선거에서 전체 의석(500석) 가운데 248석, 377석을 휩쓸 동안 128석, 96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2006년 쿠데타 이후 480석으로 줄어든 2007년 선거에서 친(親)탁신 중심 인물 100명 이상이 각종 족쇄에 묶여 불출마했는데도 탁신 세력은 233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군부가 뒷받침한 민주당은 160석으로 약진했다. 탁신을 적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군부와 민주당은 운명공동체가 됐다. 블랙 코미디였다. 태국의 식자층에서 ‘망고 리퍼블릭’이라는 자조가 퍼진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중남미·아프리카의 정치 후진국을 일컫는 ‘바나나 리퍼블릭’을 빗대 태국 정치의 후진성을 꼬집은 말이다. 진압부대와 시위대 간 총격전으로 24명이 숨진 유혈사태 국면에서 민주당은 당 해체 위기에 몰렸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신세다. 부정선거 명목으로 친탁신 정부를 해체하고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도 매 한가지였다는 말이다.



선거가 아닌 사법권력과 군부, 그리고 철새 정치인들의 야합으로 탄생한 현 민주당 연립정부에 대한 거부감은 만만찮다. 특히 하층·빈민 출신 사병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시위대에 장갑차를 빼앗기고 볼모가 된 병사들이 이틀 후 희생자들의 관을 들고 시내를 도는 행사에 스스럼없이 참여하는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이른바 ‘땡모 따한(수박 군인)’들이다. 겉은 줄무늬 녹색이지만 속은 빨간 수박처럼 친탁신 시위대인 ‘레드 셔츠’의 주장에 수긍하고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군인이라고 해서 붙은 말이다.



태국 민주당은 왜 도시 빈민·농민들로부터 외면받게 됐을까. 지난주 방콕에서 만난 태국 정치학회의 교수들은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변변히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탁신은 대중영합적인 선심 행정을 남발했다고 비난받지만 누군들 한번 자신들을 중심에 놓고 탁신처럼 정치를 해본 적 있느냐는 항변은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 민주당이 민의에 충실한 인물들을 내세워 정책정당·대안정당으로 인정받았다면 부패한 탁신 정권에 지지율까지 밑돌면서 존폐 위기에 몰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의 정당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역 기반에 안주하거나 밀실 공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데 하루쯤 시간 내서 태국 민주당의 몰락 과정을 집중 학습해보면 어떨까.



정용환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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