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시대 이야기꾼 - 무협 2.0 ⑥ 『철중쟁쟁』 작가 권용찬

중앙일보 2010.04.20 00:11 종합 30면 지면보기
독특한 주인공을 내세워 자기만의 무협소설을 개척하고 있는 작가 권용찬. [변선구 기자]
사람 죽이기를 꺼리는 사람이 주인공인 무협소설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권용찬(31)이 쓴 『철중쟁쟁』을 보면 비단 가능할 뿐만 아니라 멋진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철중쟁쟁’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쇠붙이 가운데서도 유난히 맑게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뜻으로, 무리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 풀이되어 있다. 이 심상찮은 뜻을 품은 제목은 소설을 다 읽고나면 “과연!”이란 감탄이 나오게 한다.


칼을 꺼리던 의원이 주인공 … 유장한 이야기 전개 일품

주인공은 조일관이란 고지식한 의원(醫員)이다. 명문가의 막내로 태어나 과거시험에 급제해 진사가 된 그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인물. 그런 그가 “나라의 주인은 황제이나 그 근본은 백성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의학이 비록 학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만 수많은 백성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고 나아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일”이란 생각에 의학 공부에 나선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정주 의당(醫堂)을 찾아가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 청년, 완전 모범생 스타일이다. 이를테면 칼을 찬 인물이라도 진료순서를 어기면 막아설 만큼 원칙을 지킨다. 그런 중에 우연히 무공을 배워 점차 무인들과 얽히게 되는데….



“실은 저를 키워준 로크미디어출판사의 이종주 사장이 의원을 주인공으로 한 무협을 제안했죠. 제목도 정해줬고요. 재미있겠다 싶어 살을 붙였는데 반응이 좋았죠.”



그의 작품 주인공은 수적(水賊,『수적왕』), 상인(『상왕 진우몽』) 등으로 일단 무인이 아닌 점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등장인물의 생생한 캐릭터. 조일관의 경우, 누명을 써도 그대로 받아들인 채 고집스레 자기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는 인물이다. 무겁고 진지한 성격인데 이런 그의 인품에 반한 주변 인물들이 밝은 성격으로 균형을 맞춘다.



“보통 무협소설은 대사와 그에 대한 행동으로 풀어가는데 반해 저는 한마디 하기 전에 화자(話者)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심리묘사를 해서 사실감을 높이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자니 이야기 전개는 유장할 수밖에 없다. 전 8권의 작품에서 6권에 가서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니 통쾌한 무협을 찾는 이들로선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여느 무협에선 보기 힘든 반듯한 주인공이 천하 제일 고수가 되어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섬유공학을 전공했으니 단단히 외도를 한 셈 이다.



“특이하게도 초등학생 시절,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같은 명작소설을 읽고는 중고생 때 무협소설에 맛을 들였어요. 군에 있을 때 습작을 좀 하다가 대학 3학년 때 인터넷 무협사이트에 『수적왕』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출판사 눈에 띄어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됐죠.”



의원이 주인공이니 당연히 한의학 지식이 필요했겠다. 전문가의 세계를 다루니 자연 자료조사는 충실한 편이다.



자연히 집필속도도 느리다.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작품을 쓰는데 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있지만 하루 10쪽 쓰는 게 고작이란다. 대신 구상을 철저히 하기에 일단 쓰고 나면 퇴고를 않아 그나마 도움이 된다고. 그런 쿨한 태도는 작가관에서도 드러났다.



“무협작가는 만담가라고 생각해요. 무게 잡을 것이 아니라 재미가 우선이죠.”



아직 자신은 자리잡지 못한 작가라고도 했다. 또 자기 작품에 대해 ‘용두사미’란 비판이 있다는 사실도 담담히 털어놓았다. 그런 자세가 거칠 것 없는 대신 남는 것도 없는 일반적 무협소설의 궤를 벗어나 자기만의 작품을 추구하는 힘이 되는 듯했다.



글=김성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