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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머리 위에는 별, 마음속에는 도덕” … 철학자 칸트 탄생

중앙일보 2010.04.20 00:10 종합 37면 지면보기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 마음속에는 도덕법칙”을 말하며 도덕적 의무를 강조한 칸트(1724~1804)는 도덕성보다 교리나 의식(儀式)을 기준으로 삼는 종교는 사라지고 만다고 주장했다. 칸트와 그 뒤를 이은 피히테·셸링·헤겔·쇼펜하우어 등이 독일 관념론을 꽃피우던 시기, 독일 작가 장 파울 리히터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신은 프랑스에는 육지를, 영국에는 바다를, 독일에는 하늘(air)의 제국을 줬다.”
1724년 4월 22일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이마누엘 칸트의 생애는 지극히 규칙적이었다. 기상, 차 마시기, 집필, 강의, 식사, 산보 등 모든 일에 정한 시간이 있었다. 칸트가 회색 코트를 입고 등나무 지팡이를 들고 집문 앞에 나타나 지금도 ‘철학자의 길’로 불리는 보리수나무가 있는 작은 길을 걸어가면 이웃 사람들은 정확히 3시30분임을 알았다. 사계절을 통해 그는 매일 여덟 번씩 이 길을 왕복했고, 날씨가 궂을 때면 늙은 하인 람페가 큰 우산을 옆에 끼고 그 옆을 근심스레 뒤따랐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지라 의사들은 그가 40세를 넘기면 기적이라고 진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과 엄격한 섭생법 덕분에 정확히 40의 2배가 되는 80세까지 살 수 있었다. 칸트는 1755년부터 15년간이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강사로 근근이 생활하다 45세가 돼서야 겨우 이 대학의 정교수가 됐다. 그는 일생 쾨니히스베르크를 한 번도 떠난 일이 없었고, 바다를 구경해 봤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에서 자연지리학을 강의한 최초의 교수였다.



저술가보다는 교사로서 더욱 훌륭했던 그는 60년에 걸쳐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교육원칙 중 하나는 중간쯤의 재능을 가진 학생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는 바보는 도와줄 길이 없고, 천재는 자기 힘으로 해내간다고 말했다. 거의 15년 동안 가난과 무명(無名)을 견딘 끝에 걸작 『순수이성비판』을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57세였다.



경건한 청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나 볼테르와 계몽주의 시대에 성장한 칸트의 사명은 종교를 이성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었다. 그는 종교의 기초를 도덕이라고 봤다. 우리 내면에는 거짓말이 내게 이익이 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적 의식(양심)이 있으며, 이 도덕 법칙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도덕적 의무’를 행해야만 한다.



칸트는 인간이 불사(不死)임을 느꼈다. 만일 우리가 마음속으로 지상의 삶은 새로운 탄생의 서곡에 불과하며 내세의 삶에서는 균형이 회복되어 아낌없이 베푼 물 한 잔이 백 배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지 못한다면, 불리한 선(善)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의감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세와 신의 존재를 ‘요청’(postulate)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음속의 도덕법칙’을 강조한 칸트와는 달리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물질적 성공’을 찬양한다.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일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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