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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부가 죽 쑬 때 야당은 날아다녀야 정상인데 …

중앙일보 2010.03.25 21:17 종합 39면 지면보기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다. 백기완씨가 민중후보로 출마했다. 김영삼·김대중씨가 갈라져 독자 출마하면서 재야세력의 중심이었던 민통련도 세 갈래로 쪼개졌다. 문익환 목사 등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비판적 지지’와 백씨를 중심으로 한 ‘독자세력화’, 사실상 김영삼 후보를 지지한 ‘후보단일화’파가 그것이다. 양김씨의 결렬이 ‘양심세력’이라던 재야까지 쪼개 놓은 것이다.



당시 백씨를 인터뷰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야권 표를 분산해 군사정부를 도와주는 것 아니냐.” “정권의 사주를 받은 것 아니냐.” “중도 사퇴할 것 아니냐.” 백씨는 모두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백씨는 투표 며칠 전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사퇴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는 그때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렸다. 나름 역할을 한 셈이다. 정당이 같은 정치적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당시 백씨의 충정은 이해가 간다. 민주적 정권교체를 위한 표 결집이라는 대의(大義)도 살렸다. 차이도 중요하지만 목표가 더 소중했던 것이다. 그때와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요즘 야권을 보면 차이보다 자리 욕심이 더 앞선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상황이 얼마나 야권에 유리한가. 이명박 대통령이 최대 치적 사업으로 추진하는 4대 강 정비는 종교계의 반대에 부닥쳤다. 세종시 문제는 여권 내에서 발목이 잡혀 있고, 교육 개혁은커녕 줄줄이 비리가 노출돼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대통령이 여당의 협조도 못 받고 있다. 이런 지경이라면 야당은 날아다녀야 정상이다. 제대로 된 야당이라면 정국을 쥐락펴락할 상황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견제심리가 발동되게 마련인 임기 중반의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여론조사에서 오히려 밀린다.



비전도 희망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정부의 일에 발목만 잡을 뿐 방향이 없다. 4대 강을 반대한다면서 서울에서 하는 말과 광주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 복지를 강조하지만 재원에 대한 대책이 없다. 집권 10년 동안 4대 보험에는 손도 못 대다 무료급식을 부유층까지 주는, 그야말로 본질을 한참 벗어난 문제를 선거 이슈로 삼고 있다. 자치단체를 경영하는 건 구체적 구상이 있어야 한다. 견제하는 것을 소임으로 하는 의회의 역할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뿔뿔이 흩어져 새 정당을 만들고 있다. 진보정당처럼 정치적 목표가 다른 부분이야 이름을 달리하는 게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함께 국정을 운영했던, 별로 달라 보이지도 않는 국민참여당이나 가칭 새천년민주당마저 딴살림을 차렸다. 떨어져 나간 이들도 문제지만 이를 끌어안지 못한 민주당의 포용력에도 책임이 있다. 대주주를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는 과감하게 지분을 헐어 외연을 넓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야권의 연합공천 논의를 주목하는 건 그나마 야권 지지자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지리멸렬한 야당이 저마다 깃발을 들고 나서면 아무리 여당이 죽을 쑨다 한들 선거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연합공천 논의를 보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당을 쪼갠 이유도 그렇지만 뭘 하겠다는 목표도 분명치 않다. ‘네가 빠지면 내가 쉽게 당선되겠다’는 얄팍한 계산뿐이다. 공동의 목표도 명분도 없는 바에야 당선 가능성이라도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지면 공감대를 만들 여지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권교체를 할 의욕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상대를 죽여 야권에서 패권이나 잡자는 그야말로 천박한 꿈을 꾸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다. 오죽 궁색했으면 반이명박인가. 자치행정이 중앙정부와 싸우는 것인가.



민주당은 ‘유시민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단일 후보가 돼도 경기지사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흠집을 내다 연합공천 후보가 되면 어떻게 지원할 건지 알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경선 과정의 앙금을 아직도 걷어내지 못한 것만 봐도 어떤 결과가 될지 뻔하다. 민주당을 뛰쳐나온 국민참여당이 이제 와서 연합공천을 하자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떤 경쟁방식이든 다 받겠다”던 약속도 뒤집었다. 서로 유리한 조건만 고집하다 협상대표까지 강경파 인사로 교체했다.



연합공천을 하느니 마느니 하며 관심을 끌어 조금은 재미를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지자는 더 헷갈리게 된다. 서로 책임을 떠밀고 흠집을 내느라 잃는 게 더 클 수도 있다. 연합공천을 하려면 향후 연립정권까지 염두에 두고 대안세력을 만드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정치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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