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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써니리] '외교적'으로 사는 세상

중앙일보 2010.03.25 09:54


존 헌츠먼 주중미국대사가 최근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중국이 미국과 인민폐절상과 구글철수, 미국의 대만 무기수출 등 굵직한 현안들을 가치고 마찰을 겪고 있으므로 중국 및 외신기자들이 대거로 몰려들었다.



연설과 Q&A까지 마칠 쯤, 노트한 것을 다시 보니, '건데기'가 없었다. 그냥 덮었다. '외신들 오늘 기사쓰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옆의 중국기자도 “都是废话!”라고 혼자 투덜거렸다. 직역하면 '넌센스'다.



본인의 딸이 중국에서 입양되었으며, 공자의 고향인 취푸에 다녀왔고, 중국과 미국이 지금 마찰이 되는 현안에 대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보도가 됐거나 상식적인 수준의 얘기니, 기사거리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 대학생들 앞에서 민감한 양국 현안에 대해 할 말 다한다면 그건 또 불난 양국관계의 소방수 노릇을 해야하는 대사로서 할 일도 아니다. 기자와 외교관의 역할이 다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다.



대부분의 중국대학생들은 미국대사를 직접 가까이 본 것에 대해 감격했고, 헌츠먼은 그들과 한 시간 동안 '가슴 훈훈한 얘기'를 하고 '스킨십'을 나누었으니 아주 성공적인 모임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애탄 것은 기자들이었다. 나가려는 미국대사를 쭉 둘러쌌다.



나중에 외신 제목을 보니 엉뚱하게 이란핵 문제가 제목으로 뽑혀 나왔다. 외신기자들도 뭘 제목으로 뽑을까 고민 많이 한 게다.



그러다가 며칠 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의 강연이 역시 베이징에서 있었다. 미국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currency manipulator) 으로 지정하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씨익 웃더니 "내가 정부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운을 뗀다음 미국정부의 입장에 반대하는 긴 설명을 덧붙였다. 공직에 있지 않으니 소신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만 '외교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리카이푸 전 구글 중국 사장은 최근 모임에서 한 가지 비밀을 밝혔다. 역시 자신이 더 이상 구글에 있지 않으니 이제 밝힐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우리회사에 들어오면 일요일을 반납하고 일해야 한다고 신입사원에게 말했다. 물론 나는 PR담당자에게 이것을 절대 외부에 유출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는 자리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나에겐 다르게 들렸다. 그는 2년전 나와 인터뷰에서 구글은 근무시간의 20퍼센트를 개인의 창의성을 개발하는 '자유시간'으로 준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했었다. 그때 속았구나. 쓴 웃음이 나왔다.



'자리'에서 내려오면 사람이 이렇게 '미처 못했던 말'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말 못하고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하는 순간도 생기는 것이다.



본인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은 한국에 들어간 한 한국대사관 근무자와 이전에 같이 식사를 하는데, 둘 다 미국 유학한 경험이 있어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영어공부 방법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영어공부 "완전히 속았다"고 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든지 알만한, 그리고 지금도 한국의 많은 고등학교에서 참고서로 쓰고 있는 교재이름을 대면서 미국에 가보니 영어는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 책 때문에 너무 많은 노력을 들여서 너무 비효율적으로 영어 공부했다"고 말하는 그분의 얼굴엔 분한 표정까지 드러났다.



중국에 처음 왔을때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서 잠시 영어를 가르쳤던 경험이 있던지라 나도 쉽게 수긍이 갔다. 그래 교민신문에 싣는 본인의 칼럼에 이 내용에 대해 한 번 써보겠다고 작심하였다. 벌써 몇십년째 장수하고 있는 이 유명한 영어참고서는, 이제 글로벌화된 한국에서 그만 사용해도 되겠다 싶었다.



칼럼을 쓰려던 차에 우연히 본인이 아는 교민사회의 전 중역이 이 참고서의 제작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문 발행인도 조금 난색을 표명했다. 그래 2년째 머릿속에 맴도는 이 주제를 아직까지 못쓰고 있다.

'외교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내심 못마땅하게 보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



자유기고가=써니 리 boston.sunny@yahoo.com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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