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ar&] 신세경, 남자들은 왜 그녀에게 반했나

중앙일보 2010.03.25 08:47 경제 21면 지면보기
이렇게 시끄럽게 막을 내린 드라마가 있을까. 지난 19일 종영한 MBC 인기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김병욱 연출·이하 지붕킥) 얘기다. 시트콤이지만 엔딩에서는 늘 주인공 몇을 급작스레 죽여 행복한 결말을 용납지 않는 김병욱 스타일로 마무리됐다. 네티즌 간 갑론을박이 아직도 뜨겁다. 황정음, 최다니엘, 윤시윤 등 ‘지붕킥’이 배출한 스타 중에도 신세경(20)은 으뜸이었다. 산골에서 올라와 오현경·정보석 부부 집에 입주한 10대 가정부 역할. 요즘 세대 같지 않은 조신하고 순수한 외모와 이미지, 신인답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순글래머’라는 별칭과 함께 남성팬들의 로망으로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부잣집 식모살이’라는 극중 역할을 통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계층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아역 탤런트 출신의 신세경은, 지난해 7월 여러 신인과 함께 출연한 영화 ‘오감도’ 때까지만 해도 배우들의 얼굴이 구별 안 돼 줄거리를 따라갈 수 없다는 관객 불만이 쏟아질 정도로 무명이었다. 그러던 ‘오감도’ 다시 보기 열풍이 불고 그녀의 극중 노출까지 뒤늦게 화제니 격세지감, 사람 팔자 시간 문제? 이제 그녀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시작됐다.



글=양성희 기자 , 사진=나무액터스



‘지붕킥’의 두 여인 황정음 대 신세경



3류대 출신의 실수만발 프리터족(잇따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는 비정규직)이지만 솔직하고 귀여운 ‘명랑도시녀’ 황정음이 여성들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올랐다면, ‘조신산골녀’ 신세경은 남성들의 지지가 많았다. 황정음은 입고 나오는 의상을 족족 유행시키며 화장과 패션 따라 하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극중 인기는 CF퀸 자리로도 이어졌다. 반면 신세경은 맑고, 때론 안쓰러워 연민을 자아내며, 조숙한 이미지였다.



말썽꾸러기 주인집 아들 준혁(윤시윤)의 짝사랑을 받는 세경은, 준혁의 드센 엄마(오현경)보다 더 포근하게 그를 감싼다. 사춘기 소년이 처음 연정을 품는 동네 누나 이미지다. 반면 세경은, 정음과 사귀는 까칠한 의사 삼촌 지훈(최다니엘)을 수줍게 짝사랑한다.



이런 세경의 고전적인 면모는, 현실 속 강한 여성들의 등장에 위축돼온 남성팬들을 사로잡았다. 가령 강동원급 외모를 표준 삼아 ‘루저’ 품평을 하는 여성들의 ‘도발’ 에 맞서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을 외치는 남성들에게, 세경의 순정녀적 이미지가 크게 어필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배우 신세경 특유의 섹시함이 더해졌다. 아담 사이즈에, 상대를 압도하는 바비인형급 S라인은 아니지만 나이에 비해 깊이가 느껴지는 눈빛, 무언가 할 말을 감춘 듯 호소력 있는 마스크가 묘한 매력을 자아냈다. ‘청순글래머’의 탄생이다.



청순글래머, 가정부 캐릭터의 부활



사실 ‘청순글래머’란 남성들이 가진 성적 판타지의 전형이다. ‘낮에는 성녀, 밤에는 요부’라는 성적 환상 말이다. 이런 이미지는,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식모’라는 극중 배역과도 묘하게 맞물렸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 중산층 가정에 많았던 식모는 드라마·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다. 젊고 예쁘지만 낮은 신분으로 주인집 남자와 성적으로 얽히는 역할이 많았다(상자 기사 참조). 세월이 흘러 시간제 가사도우미(파출부)로 대체되면서 드라마에서도 점차 사라졌다.



청순글래머 가정부 세경은, 시트콤 주인공답게 이런 식모 이미지의 정형성을 비튼다. 주인집 남자(정보석)와 성적인 긴장감을 형성하기는커녕, 찌질한 구박데기 보석의 유일한 친구가 돼준다. 가정 내 권력관계에서도 세경이 오히려 보석보다 우위일 정도다. 반면 세경은 삼촌 지훈, 조카 준혁과 동시에 러브라인을 이루는데, 그 ‘위험한’ 설정이 현실적 파괴력을 갖기 직전 극은 막을 내렸다.



식모 세경은 로맨틱 판타지 대신 현존하는 계층·신분의 벽도 일깨웠다. 결국 “우리 집 일하는 애”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지훈과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예감했다. 마지막 회에서 세경은 “검정고시 보고, 대학도 가고,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죠”라는 대사를 남겼다. 정글 같은 경쟁만능, 어차피 소수 승자는 정해진 불공정 게임 같은 삶에 지친 ‘88만원 세대’가 크게 공감했다.



하이킥을 찬 서태지의 소녀



데뷔는 1999년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테이크5’다. 당시 9살 꼬마 신세경의 신비롭고 강렬한 표정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서태지가 누군지 몰랐던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할아버지 생각을 하며 눈물 흘렸고, 그 얼굴은 서태지 앨범 포스터도 장식했다. 첫 연기는 14살, 문근영의 친구로 나온 영화 ‘어린 신부’(2004)다. 이어 SBS ‘토지’(어린 서희), MBC ‘선덕여왕’(천명공주 아역) 등에 출연했다.



김병욱 PD는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예쁜 옷, 예쁜 신발이 없어도 스스로 고유의 빛을 내는 아름다운 배우”라고 썼다.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 임수정을 발탁했던 김지운 감독은 “당시 신세경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근영보다 3살 어리지만 훨씬 성숙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한동안 어려움도 있었다. 스스로 “중학교 때 대학생 외모라 캐스팅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신세경은 마침내 하이킥을 찼고, 더 이상 걱정은 없다. 배우론 나탈리 포트만,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 배우 겸 작가 에단 호크를 좋아하는 문학소녀다. 말수 적고 내성적이지만 강단 있고 고집도 만만치 않다는 평이다. ‘지붕킥’의 다른 배우들이 전부 차기 작을 골랐지만 아직도 고심 중이다. 16살 첫 주연작 호러영화 ‘신데렐라’ 때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나이를 먹는 것. 연기엔 직접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이 묻어나야 한다”고 말해 애늙은이 소리를 들었던 그녀다.



어쩌면 신세경은 반짝 뜬 청순 글래머라는 성적 환상 속에 묶어 두기엔 너무도 많은 것이 준비된 배우가 아닐까. 도무지 요즘 여자 같지 않던 극중 세경처럼, 요즘 배우 같지 않은 무게감이 그녀를 믿고 지켜보게 한다.



글=양성희 기자 , 사진=무비위크



*이미지 무단 전제를 금합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