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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허봉, 돌을 던지다

중앙일보 2010.03.25 08:37 경제 19면 지면보기
제15보(175∼204)=허영호 7단은 올해 들어 12승2패다. 17세 소년 기사 박정환 7단이 15승2패로 다승 1위. 그 다음 이창호 9단(13승7패)과 박영훈 9단(13승3패)이 뒤를 쫓고 있고 허영호는 다승 순위 4위에 올라 있다(승률에선 이세돌 9단이 9전9승 100%로 1위다). 3월 현재 한국랭킹은 10위. 말하자면 허영호는 한국바둑의 ‘든든한 허리’인 셈이다.


<8강전 3국> ○·추쥔 8단 ●·허영호 7단

하지만 아쉽다. 여기서 딱 한 걸음만 더 오르면 바로 정상인데 그게 안 된다. 무엇이 부족할까. 동료들은 “너무 순하다”고 말한다. 승부세계에선 순한 것도 약점이 된다. 허영호의 별명이 ‘허봉’이 된 것도 다 순한 성격 탓이다. 허영호 7단이 이 말을 들으면 픽 웃겠지만 어느 분야든 가장 위쪽은 고양잇과의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쪽이 지배한다. 어떤 측면에서 세상엔 ‘착한 강자’는 없다고 봐야 한다.



230수에 흑은 돌을 거뒀다. 사실 진즉 끝난 바둑이지만 허영호는 차마 던질 수 없었다. 8강전 추첨에서 추쥔과 부닥쳤을 때 그는 ‘4강’의 희망을 봤다.



구리, 쿵제, 천야오예 등 쟁쟁한 상대들을 모두 피해 비교적 쉬운 추쥔과 만나게 된 것부터 행운의 조짐이라고 생각했다. 희망이 컸던 만큼 상처도 크다. 부득이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데 그 다음 기회는 또 언제나 찾아오는 것일까. 아무래도 오늘은 못 마시는 술이라도 한잔해야 할까 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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