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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벼랑끝 전술 그리스에 본때 보여줬다

중앙일보 2010.03.25 02:51 경제 4면 지면보기
그리스 아테네의 경찰들이 23일(현지시간) 한 은행 앞을 지키고 있다. 정부의 재정 긴축안을 반대하는 공무원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그리스는 병원·은행 등 공공 기관의 업무가 마비됐다. 이달 초 그리스 정부는 48억 유로 규모의 추가 긴축안을 발표했다. [아테네 AFP=연합뉴스]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던 그리스가 자충수를 뒀다. 그동안 그리스는 “유럽연합(EU)이 아니어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으면 된다”며 큰소리를 쳤다. 설마 EU가 공을 IMF에 넘길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EU의 맹주인 독일과 프랑스가 그리스 문제를 IMF에 넘기기로 했다. IMF가 지원을 결정하면 4, 5월에 갚아야 할 부채만 200억 유로에 달하는 그리스는 구제금융으로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국이 10여 년 전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는 IMF의 까다로운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뉴스분석] ‘IMF서 지원’ 가닥

◆그리스에 강경한 독일=EU가 그리스를 직접 지원하지 않고 IMF를 지원의 전면에 내세운 데는 독일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독일은 그동안 EU가 공동으로 그리스를 지원하는 것을 반대해 왔다. 독일이 그리스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내의 반대 여론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21일 독일 국민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 5명 중 3명은 지원에 반대했다. 5월에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부로선 이런 반대 여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독일은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를 줄이고 임금 인상을 억제해 왔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EU의 안정·성장 협약을 충족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온 독일 국민 입장에선 자신의 세금으로 그리스를 지원하는 걸 용인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유럽 경제의 헤게모니(주도권)를 장악하려는 뜻도 있다. EU 창설의 주역인 독일과 프랑스는 EU 창설 때부터 입장이 달랐다. 독일은 ‘강한 유로화’를 기반으로 한 경제 성장을 원했다. 독일은 모든 EU 국가가 안정·성장 협약을 견실히 이행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이 부실한 프랑스는 그리스 등 재정 건전성이 낮은 국가도 EU에 포함시켜 독일의 헤게모니를 견제하길 원했다.



일단 프랑스가 IMF 지원안에 대해 독일에 한발 양보함으로써 헤게모니는 독일 쪽에 기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독일은 남유럽 국가들에 재정 감축에 대한 확실한 노력 없이는 어떠한 지원도 없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게 됐다. 강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원은 “그리스 문제를 통해 앞으로 다른 남유럽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차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에 적극적인 IMF=이런 상황에서 IMF가 그리스를 지원하게 되면 독일은 두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내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IMF를 통해 그리스에 강도 높은 재정 감축 프로그램을 요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유로권 경제의 체질이 개선될 수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악셀 베버 총재는 22일 “유로존 회원국들이 독일의 경제개혁을 따라야 유로권 전체의 경제 여건이 강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잃는 것도 많다. 일단은 시장에서 유로화의 가치가 예전보다 떨어지는 위험성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스의 긴축 정책으로 경기가 침체되면 그 여파가 유럽 전체에 미칠 수 있다. 특히 역내 간 무역이 활발한 독일도 타격을 입게 된다. 무엇보다 EU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질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EU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면서 유로화의 가치가 점점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와중에 IMF가 그리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뭘까. 존 립스키 IMF 수석부총재는 최근 “그리스 정부가 금융지원을 요청해 온다면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IMF가 EU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그리스 문제에 이처럼 적극적인 이유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점점 축소되고 있어서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IMF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 IMF의 잠재 고객들은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내정을 간섭받지 않으면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김득갑 연구위원은 “IMF가 1990년대 말 아시아에서 누렸던 영향력을 유럽으로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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