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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규제형평제, 정교한 각론 설계를

중앙일보 2010.03.25 02:51 경제 2면 지면보기
‘규제 공화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 경제장관들이 취임할 때마다 힘주어 강조하는 게 규제 개혁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건 이명박 정부는 특히 이를 강조했다.



하지만 속 시원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물론 정부는 나름대로 규제를 없애거나, 고치거나, 다듬어 왔다. 문제는 규제를 받는 기업들이 계속 불편해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노력이 별 효과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0월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기업의 규제개혁 만족도는 38.9%였다.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에 대한 만족도(51.7%)보다 낮았다.



정부가 조바심을 낼 만도 한 대목이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게 23일 발표된 규제형평제다. 일괄 적용돼 온 규제 때문에 ‘명백하고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경우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맞춤형 규제완화’ 또는 ‘핀포인트 규제완화’라고 보면 된다. 발상을 전환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부작용도 예상된다. 특히 그때그때 다른 규제 적용은 형평제란 이름과 달리 특혜 시비를 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A사의 주차장 건설 의무는 면제해 주고 B사엔 규정대로 하라면, 또 사촌 집 재건축은 허용하고 우리 집 재건축은 불허한다면 누구나 배가 아플 거다.



‘명백하고 중대한 피해’란 조건도 추상적이다. 규제형평위원회의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판단한다지만, 당사자가 쉽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이들은 위원회가 결정한 선례를 대법원의 판례처럼 여길 수 있다. ‘과거 A가 예외를 인정받았으니 나도 될 것’이라 생각한단 얘기다. 이렇게 되면 맞춤형이란 말은 무색해진다. 한번 구제해 준 사안은 유사 사례의 ‘가이드라인’이 된다. 자칫하면 민원이 폭증하고, 행정소송이 잇따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분쟁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쏟아지는 민원을 감당할 인력과 조직은 어떻게 갖출지 등도 불분명하다.



일을 하다 보면 총론은 그럴듯하지만 각론이 부실해 좌초하는 경우가 있다. 정책도 그렇다. 규제형평제가 나중에 이런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도입 때까지 남은 1년여의 시간을 정교한 각론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



권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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