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성사장단 “리더십 절실” 건의 … 이 회장 한 달 고심한 끝에 수락

중앙일보 2010.03.25 02:37 종합 2면 지면보기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


퇴진에서 복귀까지 23개월

2008년 4월 22일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이 같은 인사말을 남기고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전 삼성 법무팀장 김용철씨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이후 이 회장은 지난해 말 단독 특별사면을 받을 때까지 특검 출두 및 재판 출석을 제외하고는 일절 대외적으로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계열사 사장단 만찬 형식으로 치러왔던 그의 생일잔치도 지난해에는 가족들만 모인 채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조촐하게 치렀다.



이 회장이 ‘은인자중’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법원은 이 회장에 대해 조세포탈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배임) 혐의를 적용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의 핵심 쟁점이었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을 둘러싼 법적 논란이 마무리 지어진 것이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이 회장의 경영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룹 안팎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삼성 계열사의 최고경영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사석에서 ‘회사 경영 정상화’ ‘오너 경영체제의 장점’ 등을 거론하며 이 회장 복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 회장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재계와 체육계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회장 자신도 지난해 말 정부로부터 단독 특별사면을 받은 뒤부터는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보여왔다. 이 회장은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북미가전쇼(CES)와 2월 초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잇따라 참석해 삼성의 경영 문제와 미래 전망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특히 호암 탄생 100주년 행사에서는 경영복귀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삼성이 약해지면 도와야죠”라고 답했다. 활발한 행보와 거침없는 답변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이었다. 경영복귀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였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도 CES 기자간담회에서 “급변하는 시기, 이 회장의 선견력이 큰 역할을 해왔다”며 복귀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글로벌 기업인 도요타가 위기를 맞은 것도 이 회장 복귀의 계기가 됐다.



결국 삼성사장단 협의회는 지난달 17일과 24일 이 회장의 경영복귀를 정식으로 논의한 뒤 24일 "이 회장의 경륜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건의문을 작성했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 건의문을 들고 캐나다 밴쿠버에 머물고 있던 이 회장을 직접 찾아가 전달했다. 이 회장은 ‘좀 더 생각해보자’며 한 달을 고심한 끝에 복귀를 선언했다.



이현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