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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5~10년 비전 내놓고 조 단위 투자 결정할 것”

중앙일보 2010.03.25 02:36 종합 2면 지면보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복귀를 부른 것은 ‘위기감’이었다. 삼성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있던 지난해 세계 전자업계의 1등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글로벌 경영 환경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일본 도요타가 갑작스러운 리콜 사태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시장에선 스마트폰을 앞세운 애플과 구글의 도전이 거세게 밀려왔다. 반도체 시장 1위 탈환을 노리는 일본 업체들의 추격도 이어졌다.


복귀 이후 삼성은

이인용(부사장)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사장단회의에서 처음 (이 회장의 복귀) 얘기가 나온 것이 2월 17일인데, 그 무렵 도요타 사태가 가장 강하게 얘기될 때다. 글로벌 톱 기업이 저렇게 흔들리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삼성의 내부 시스템은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삼성은 그룹의 구심점이었던 이 회장이 퇴진한 공백을 사장단협의회가 메우는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사업 등 각 계열사간 이해가 대립하는 사안을 매끄럽게 조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시장 선점의 원동력이 됐던 과감한 투자 결정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익명을 원한 삼성 고위관계자는 “지금의 세계 1등은 예전에 잘했기 때문인데, 2~3년 후에도 삼성이 1등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사장단의 고민과 불안감이 컸다”며 “이 회장이 복귀한 만큼 사장들이 상당히 안도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단의 복귀 요청을 받고 한 달간 숙고한 뒤 나온 이 회장의 복귀 결정 역시 이런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삼성 관계자는 “글로벌 최고 기업도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과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대부분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글로벌 1등인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판단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복귀로 삼성의 스피드 경영과 선제적 투자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 부사장은 “이 회장은 예전에도 5~10년 단위의 그룹이 나갈 방향과 비전, 그룹의 미래가 걸린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 등을 결정했다”면서 “역할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회장 퇴진과 함께 해체된 그룹 전략기획실의 부활 여부다. 전략기획실과 같은 회장 보좌 기구가 되살아나면 삼성 경영 시스템의 특징이었던 ‘이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3각 체제가 회복되는 셈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날 삼성전자 회장실을 강남 서초동 사옥 42층에 마련 중이라고 밝히면서도 전략기획실 부활에 대해선 명확히 하지 않았다. 이 부사장은 다만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있는 기존의 업무지원실과 커뮤니케이션팀·법무실을 업무지원실·브랜드관리실·윤리경영실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 안팎에선 업무지원실 등 3개 실이 사실상 과거의 전략기획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그룹을 통솔하는 것을 보좌하는 조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면서 “3개 실이 사실상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복귀는 후계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친정 체제가 강화되면서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는 외아들 이재용 부사장에 대한 경영승계 과정이 더욱 탄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대 윤창현(경영학과) 교수는 “이 회장의 뛰어난 경영 능력과 자질을 썩히는 것은 국가적·사회적 손실”이라며 “이 회장이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삼성에 활력을 불어넣고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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