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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하> 탈북자 보험사기의 실체

중앙일보 2010.03.25 02:10 종합 8면 지면보기
탈북자들이 보험사기 때 단골로 입원하는 경기도의 한 대형 병원. 환자복을 입은 한 입원자가 밖에 나와 동료와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 주말 경기도 부천의 A병원. 5층 입원실 앞 소파에서 북한 억양의 환자 2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 간호 도우미에게 “입원 환자 가운데 북한 출신이 많으냐”고 물었다. 이 도우미는 “대부분 옌볜(延邊) 등지에서 온 조선족으로 행세한다”고 귀띔했다. 병원 주변에 있는 한 노래방 주인은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환자복을 입은 채 단체로 몰려와 놀고 갈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이 병원이 바로 탈북자들이 보험사기를 칠 때 이용하는 대표적인 병원이다.


설계사·탈북자·병원 짜고 ‘보험 로또’ 챙겨
노래방 주인 “환자복 입고 단체로 놀고 가”

경기도 안양에서 보험설계 일을 하는 박모(43)씨는 “이 병원 외에도 안산 B병원, 화성 C병원, 용인 D병원 등 수도권 일대 병원들이 탈북자들을 많이 입원시키는 곳”이라며 “보험 사기에 가담한 설계사는 원무과 직원과 짜고 진단서 등을 허위 발급해 탈북자들이 보험금을 타게 도와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경기도 소재 한 병원은 한 개 동 전체를 ‘탈북자 병동’으로 꾸밀 정도”라고 전했다. 이 병원에 입원하려고 대기 중인 탈북자도 꽤 많다. 탈북자 출신 전직 보험설계사인 유모(41)씨는 “탈북자 출신을 원무과 직원으로 고용해 조직적으로 탈북자 환자를 ‘모집’하는 병원도 있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입원한 탈북자들 사이에서 “우리가 병원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첫달 보험료는 공짜”= 상습적으로 보험사기에 가담해온 탈북자 이모(37)씨의 증언이다.



“지난해 9월 중순 부천 A병원 주차장에서 정모(40)씨를 만났어요. 우리는 같은 해(2007년) 탈북한, 하나원 동기생입니다. 잠시 후 서류가방을 멘 한 젊은 여성이 도착했어요. 셋은 인근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김이라고 성을 밝힌 이 여성은 ‘2004년 탈북해 지난해부터 평택의 한 보험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이날 정씨는 김씨를 통해 3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했습니다. 김씨는 ‘첫 달 보험료는 우리가 낸다. 당신은 두 번째 달부터 납부하면 된다’며 ‘3~4개월 후쯤 병원에 입원할 때 다시 연락하라’고 안내해 줬어요. 정씨는 지난 1월 초 김씨의 소개로 A병원에 입원했어요. 병명은 기관지 폐렴으로 나왔고요. 정씨는 2주 진단을 받고 25일간 입원했지요. 퇴원 후 진단서 등 서류를 갖춰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고, 한 달 뒤 380여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어요.”



이씨 역시 지난 3년 동안 자신과 부인 명의로 8개의 보장성 보험에 가입해 지금까지 4000만원이 넘는 보험금을 탔다. 그는 하나원을 나온 직후 김씨로부터 보험 관련 정보를 들었다. 그는 김씨에게 매번 수수료 30만원을 주고 A병원을 포함해 수도권에 있는 병원 3곳에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두 달 가까이 입원한 후 진단서 등을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 왔다.



◆피라미드식 ‘영업’도=보험설계사들은 하나원 퇴소일에 맞춰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탈북자에게 접근해 “보험에 가입하면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며 꼬드긴다. 이미 가입한 탈북자를 통해 같은 기수의 탈북자나 가족들의 가입을 유도하는 피라미드식 영업도 구사한다. 거액의 보험금으로 집도 사고, 차도 샀다는 얘기가 입 소문으로 퍼져 나가면서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걸리지만 않으면 보험이 로또’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보험설계사는 월 보험료의 400%를 유지수당으로 받는다. 5~6년 전부터 경기도 평택과 오산 등에서 보험 대리점을 운영해온 탈북자 김모(39)씨는 보험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100여 명의 탈북자를 보험에 가입시켜 아파트 한 채와 일반 주택 한 채를 구입했다.



금융당국과 보험회사의 감시가 강화되자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감시가 소홀한 우체국·농협·새마을금고 등에서 출시한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험금을 수령한 뒤 신변 위협을 이유로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새로 발급받아 다시 보험에 가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험설계사들은 서류 심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같은 날 동시에 여러 보험회사에 서류를 집어넣어 승인을 받는다. 가입자들은 단속에 대비해 퇴원 후 곧바로 보험금을 신청하지 않고 1~2달 후에 보험금을 신청한다.




‘샴푸’‘캐비닛’ 같은 일상 속 외래어 못 알아들어

탈북자 고단한 남한 생활 




“저기 캐비닛 위의 키 좀 가져다 주쇼.”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탈북자 이모(32)씨가 두 차례나 되묻자 회사 사장은 짜증을 내며 물컵을 던졌다. 그는 사장과 대판 싸우고 그 자리에서 직장을 그만뒀다.



19세에 탈북해 단신 입국한 김혁(28·서강대 대학원생·북한통일학)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샴푸’라는 말을 몰라 수퍼마켓 주인에게 ‘머리 감는 것 어디 있느냐’고 물었어요. 매대에 찾아봐도 외래어투성이여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거든요. 억센 말투로 주인에게 이것저것 묻자, 사람들이 말다툼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우르르 몰려들더군요. 부끄러워서 다시는 가지 않았어요.”



서울 양천구 한빛종합사회복지관의 구자홍 팀장은 “탈북자들이 남한의 언어 생활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외래어다. 외래어에 익숙해지는 데 5년쯤 걸린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초적인 생활부터 어려우니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인간 관계는 더 큰 장벽이다. 탈북자들의 남한 생활이 고단한 이유다.



◆취업해도 오래 못 버텨=일자리가 서민의 화두지만 탈북자에겐 더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의 실업률은 13.7%다. 한국 전체 평균(3.2%)을 4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탈북자 신분’ 때문에 취업이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구인광고를 보고 식당 등에 전화를 걸면 말투를 듣고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조선족이라고 하면 낫다. 북에서 왔다고 하면 말없이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것이 남한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어렵게 직장을 구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탈북자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1년4개월로, 한국 노동자 평균(4년6개월)의 3분의 1수준이다. 안정된 일자리가 없으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탈북자 중 52.3%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입국할 때 신세진 브로커에게 사례금도 줘야 하고, 북에 남은 가족에게 생활비도 부쳐야 하는 게 대부분의 탈북자 입장이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일자리 적응은 쉽지 않다. 범죄는 이런 탈북자들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김혁씨는 “보험사기 업자들의 화려한 언변에 범죄인 줄도 모른 채 넘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율권을 남용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정책은 곧 통일 정책=탈북자 포용은 ‘우리 민족이니 도와야 한다’는 당위나 인도적 차원의 문제 이상이다. 데일리NK 손광주 편집장은 “북한 사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지금도 전화 연락하고 돈을 보내고 있는 탈북자들이 이 부분에서 수행할 역할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에는 대북 정책만 있을 뿐 통일 정책은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흥광 대표는 “탈북자의 5%는 북에서 의사·교사·공무원 등을 한 지식인이다. 이들도 남한에서는 단순노동에 종사한다. 얼마 안 되는 이들도 거두지 못하면 통일 후 수천만 명이 들어왔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김시래·진세근·이승녕·김준술·고성표·권근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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