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각막 확보 늘리려면 병원에 사망자 신고 의무화해야”

중앙일보 2010.03.25 01:56 종합 20면 지면보기
20년 전 미국에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소년의 꿈은 의사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생각하며 각막과 피부·뼈 등을 기증하기로 했다. 소년은 죽었지만 100명이 넘는 사람이 새 삶을 선물받았다. 얼마 후 소년의 어머니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적은 편지가 배달됐다. 어머니는 지갑에 아들의 사진과 함께 편지를 꽂고 다닌다.


필립 펠튼 미국 각막기증 단체 부회장

24일 만난 필립 펠튼(57·사진) 미국 조직은행(Tissue Banks International) 부회장은 “소년의 기증이 가능했던 건 병원 측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조직은행에 알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소년의 어머니에게 기증을 권했던 사람이 펠튼 부회장이었다. 그는 “각막 기증이 실제 이식으로 이어지려면 사망자 발생 신고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여 개국에 지부를 둔 TBI는 각막기증 단체 중 세계 최대 규모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국의 모든 병원이 사망자 발생 신고를 하나.



“1997년 법제화돼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신고를 받은 관련 NGO가 가족을 만나 기증에 대해 설명하고 바로 적출 수술이 이뤄질 수 있게 돕는다.”



-제도 도입 후 각막 기증이 얼마나 늘었나.



“두 배 이상 늘었다. 현재 미국에선 매년 4만5000건 정도의 각막 기증이 이뤄진다. 이식이 필요한 사람은 3만6000여 명이다. 남는 각막은 해외로 수출한다. 1997년 법제화 이후에 일어난 변화다.”



-한국에선 기증 신청자의 사망 여부를 알 수 없는데.



“가족을 잃은 유족은 슬픔에 빠져 사망 사실을 먼저 알려오기 어렵다. 병원의 신고가 없으면 기증 신청자가 늘어도 실제 이식 건수 증가로 이어질 수 없다.”(실제로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하고 선종한 지난해 장기기증 신청자는 18만 명을 넘어섰다. 2008년 신청자는 7만 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2만여 명이 각막 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 매년 200명만이 각막을 이식받는다.)



-미국의 각막 기증이 활발한 또 다른 이유는.



“적출 전문가 제도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선 60년대부터 각막이나 피부·뼈 등의 조직은 의사가 아닌 적출 전문가가 적출 수술을 한다.”



-적출 전문가가 생긴 배경은.



“사망자는 대부분 밤에 발생한다. 또 사후 바로 적출해야 이식이 가능하다. 적출 전문가들은 24시간 신고를 받고 30분 안에 현장에 출동한다. 숫자가 적은 의사만으론 불가능하다.”



-이 같은 제도가 미국 외 다른 나라에도 실시되고 있나.



“필리핀에선 97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각막 수입국이던 필리핀은 그 후 10여 년 만에 수출국이 됐다. 세계 10여 개국에서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초청으로 방한한 펠튼 부회장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안과 전문의들을 만났다. 그는 “제도가 변하면 각막 이식을 기다리는 2만 명의 삶도 변한다”고 했다.



정선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