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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멸종 위기 독수리, 안전지대도 사라질 위기

중앙일보 2010.03.25 01:48 종합 20면 지면보기
월동 중인 독수리들이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거곡리 논에 무리 지어 앉아 있다. [조용철 기자]
23일 오전 11시40분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거곡리의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안 장단반도. 군 작전지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고 농민 등만 제한적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임진강을 따라 난 폭 6m의 제방도로 옆 논에는 독수리가 10∼20여 마리씩 무리 지어 앉아 있다. 독수리와 100m 떨어진 갈대숲 가장자리에는 한국조류보호협회가 전날 오후 독수리 먹이로 갖다 놓은 죽은 돼지 2t이 놓여 있다. 낮 12시가 되자 50여 마리의 독수리가 무리 지어 날아들었다. 길이 100∼150㎝인 날개를 활짝 편 채 원을 그리듯 활강하며 먹이터 주변으로 내려앉았다. 독수리 숫자는 계속 불어 100여 마리가 됐으나 1시간여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기만 할 뿐 먹이에 접근하지 않는다.


세계 최대 월동지인 민통선 안 장단반도를 가다

동행한 한국조류보호협회 한갑수(57) 파주시지회장은 “독수리는 예민해 사람이 주변에 나타나거나 시끄러우면 먹이가 있어도 피하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레미콘 트럭 두 대가 빠른 속도로 제방도로를 지나가자 독수리 20여 마리가 놀라 급히 날아오른다. 월동지 입구 제방도로에는 ‘차량을 이용할 경우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쓰여 있는 안내판만 서 있을 뿐 탐조 전망대나 월동지를 보호하기 위한 가림막은 없다.



전봇대에 앉은 독수리가 경계병 역할을 하는 듯하다. [조용철 기자]
군사분계선과 3㎞ 떨어진 장단반도는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뒤 일반인의 발길이 끊겨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다. 구릉지와 벌판이 넓게 형성돼 있고 먹잇감인 오리·기러기가 많은 강 하구와 가까워 독수리 월동지의 적지로 꼽힌다. 게다가 월동기인 10월 초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 동물보호단체가 정기적으로 먹이도 준다.



한 지회장은 그러나 “월동지 옆으로 공사 차량이 수시로 마구 달리는 데다 몰려드는 생태체험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독수리 월동지 서식환경이 날로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독수리들이 월동지를 벗어나 인근 파주 도심을 맴돌다 수난을 당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길이 2∼3m에 이르는 양 날개를 펼친 채 내려앉다 전선에 걸려 날개나 다리를 다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먹잇감을 구하지 못해 굶는 경우도 있다.



지난겨울에는 19마리가 먹이 부족으로 탈진하거나 부상했다. 또 7마리는 폐사한 채 발견됐으며 2마리는 감전사했다. 조류보호협회 측은 먹이를 찾지 못해 탈진해 구조된 13마리 중 3마리는 회복시켜 날려 보내고 10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날개·다리를 다친 6마리는 고향인 몽골로 날아갈 수 없어 파주의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2002년 이후 파주시 일대 장단반도를 찾은 독수리는 2008년에 1200여 마리였으나 지난해는 1000여 마리로, 올해는 700여 마리로 줄었다.



파주=전익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독수리는



- 사냥 기술이 없어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



- 몸 전체가 검은 갈색이다. 날개깃과 꼬리, 부리 끝은 검은색이며 다리는 회백색.



- 양 날개 길이는 2~3m, 몸무게 6∼14㎏



- 생후 6개월이면 어미와 비슷한 크기로 자란다. 수명은 20년 정도.



- 서식지인 몽골에서만 산란, 한번에 알 1개를 낳는다.




보호구역 지정 시급하지만 …

반경 500m 개발 제한 … 농민·지주 “재산권 묶인다”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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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의 수난을 막기 위해서는 월동지에 대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 현재는 동물보호단체가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는 것이 보호활동의 전부다.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이 조류방사장에서 다친 독수리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만(64) 한국조류보호협회장은 “월동지의 서식환경이 침해받게 되자 먹이 활동을 위해 도심지 인근으로 나갔다가 굶어 쓰러지거나 전선에 걸려 날개 및 다리를 다치는 사례가 잇따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장단반도 일대가 문화재 지정 구역(독수리 보호구역)으로 빨리 지정돼야 체계적으로 독수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립중앙과학관 백운기(48·조류학 박사) 연구관은 “한국에서 월동하는 2500여 마리 독수리는 대부분이 1∼4살짜리 어린 새(유조)여서 세계적인 멸종 위기 조류인 독수리의 보존을 위해서는 월동지에서의 독수리 보호대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몽골에는 추위에 강한 어미 새(성조) 4000쌍이 남아 겨울을 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말 장단면 거곡리 63번지 일대 논과 갈대밭 5만1600㎡를 독수리 보호 구역으로 예고했으나 아직까지 지구지정이 되지 않고 있다.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는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 한강 하류 재두루미 도래지, 철원 천통리 철새 도래지 등 30여 곳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보호구역이 되면 구역을 포함한 반지름 500m 이내에서는 건물 신·증축 등 각종 개발 행위가 제한된다.



파주시 백찬호 문화팀장은 “재산권 침해와 지역개발 저해 등을 우려하는 농민과 토지 소유주들의 반발이 심해 월동지에 대한 보호구역 지정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민과 토지소유주들은 그렇지 않아도 민통선 안에 토지가 있는 바람에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마당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중첩규제로 재산권 피해가 가중될 것과 해당 지역에 대한 장기적인 지역개발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팀장은 “하지만 독수리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문화재청·경기도와 함께 7억원을 들여 지난해 말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 기슭에 탈진하거나 부상당한 독수리를 돌볼 수 있는 독수리 구조 및 치료시설을 조성,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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