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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풍경 바꾼 선생님 한 분 만나보시겠어요

중앙일보 2010.03.25 00:54 종합 27면 지면보기
프랑스 교육 현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 ‘클래스’. 로랑 캉테 감독은 “중학생 아들이 ‘아빠가 만든 영화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해서 참 기뻤다”며 웃었다. [영화사 진진 제공]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때론 고성과 손가락질이 오가지만, 그러면서 교집합을 찾아가는 과정이 민주주의다. 영화 ‘클래스’는 파리의 한 중학교를 무대로 교사와 학생이 만들어가는 시끌벅적한 민주주의의 현장을 그렸다. 학생은 쉴 새 없이 당돌한 질문을 던지고, 교사는 이를 사고와 토론의 장으로 연결시키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의 소통과 교감이 이뤄진다. 공교육 붕괴를 얘기하는 요즘의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풍경이다.


서울 온 로랑 캉테 감독

로랑 캉테(49·사진) 감독은 네 번째 장편인 이 작품으로 2008년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프랑스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기는 21년 만이다. 개봉(4월 1일)에 맞춰 내한한 그를 24일 만났다.



‘클래스’는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교사 마랭의 프랑스어 수업시간을 중점적으로 비춘다. 제각기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마랭에게 속사포 질문을 쏟아낸다.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프리카·아랍계 이민자 자녀들이 섞여 있는지라 “왜 예문에서 항상 백인 이름만 쓰느냐”고 항의도 한다. 심지어 “선생님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있다”고 장난도 친다. 중요한 건 교사의 반응. 마랭은 참을성 있게 동성애 토론으로 발전시킨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호기심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생각하는 걸 도와주는 곳,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죠.”



영화의 원제는 ‘벽 사이에서(Entre Les Murs)’다. “교사에게 학교는 학생을 보호하는 벽이죠.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를 감옥처럼 느낄 때가 많아요.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 마주치는 사회이자, 사회의 축소판이죠. 이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적응해나가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프랑스에서 170만 관객을 동원한 ‘클래스’는 유럽에서 2000만 달러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세계 60개국에 수출됐다.



국경을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교육현장의 리얼함은 실제 교사와 학생들을 기용한 덕이 크다. 1년 간의 교편 경험을 소설로 쓴 원작자 프랑수아 베고도는 마랭 역으로 직접 출연도 했다. 퇴학 위기에 처하는 문제아 술레이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사에게 깐죽대는 에스메랄다, 중국에서 온 모범생 웨이, 교사의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쿰바 등 알록달록한 면모의 아이들은 중하류층 거주지인 파리 20구 돌토 중학교 학생들이다. 술레이만의 어머니를 제외한 학부모들도 해당 학생의 실제 학부모다. 감독은 약 8개월간 주 3회, 회당 세 시간씩 연기를 지도했다.



“비전문배우를 쓴 건 그들의 경험과 생각이 영화에 스며들면 훨씬 더 풍성해질 거라고 생각해서죠. 대강의 상황을 던져주고 그때그때 느낌대로 연기하도록 했어요. 40여 명으로 시작했다 25명이 남았죠. 아이들이 어찌나 열의가 강하던지 촬영이 끝날 때까지 전혀 흐트러짐이 없어서 직업배우들과 할 때보다 오히려 덜 힘들더군요.”



128분의 ‘생생토크’를 위해 그는 카메라 석 대를 사용했다. 한 대는 마랭을, 다른 한 대는 마랭과 대화하는 아이를, 마지막 카메라는 나머지 아이들의 반응을 담았다. 덕분에 학교와 학생간의 권력관계, 다인종·다문화가 뒤섞인 교실 내 복잡한 분위기가 실감나게 드러난다. 징계위원회에서 술레이만의 퇴학이 결정되고 난 영화 끝 장면도 인상적이다. 흐트러진 책과 걸상만 남아있는 텅 빈 교실이다. 감독의 표현을 빌면 “한바탕 전투가 끝난 전쟁터 느낌”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전투가 끝난, 학교라는 이름의 전쟁터다.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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