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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닮은 정치, 닮지 않은 정치

중앙일보 2010.03.25 00:38 종합 34면 지면보기
워싱턴에서 한·미 두 나라의 신문을 읽다 보면 닮은꼴 기사에 어리둥절해지는 경우가 있다. 김길태 팬카페 기사가 그랬다. 버지니아주는 지난주 미성년자 성폭행·살해범의 사형을 집행했다. 범인은 16세 소녀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한 뒤 3시간 만에 14세 여동생을 성폭행한 짐승이었지만 막상 사형 집행엔 논란이 따랐다.



매일 반복되는 정치기사도 겉모양은 다를 게 없다. 사사건건 다투는 미국 의회 싸움이 우리 정치판 구조와 어슷비슷하다. 야당인 공화당은 오바마 취임 후 사안마다 대안 없이 맞선다. 건강보험, 기후변화, 고용창출 법안 등을 둘러싼 대치에서 그렇다. “무조건 반대”로 똘똘 뭉쳐 대통령을 흠집 내려 애쓴다. 여당인 민주당의 지리멸렬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매번 목소리가 갈려 자중지란이더니, 건강보험법 처리 땐 여여 갈등인지 여야 갈등인지 헷갈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꼼수정치도 내놨다. 어떻게든 건보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당 지도부는 의원들이 법안에 투표하지 않고도 표결로 간주하는 의회법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 만지작거렸다. 실행되진 않았지만 민주당의 우회로를 듣자니 여의도가 떠올랐다. 미국이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이고 흑인 대통령이 “미국 단합”을 외쳤던 감동이 현실 정치에선 적다.



문제는 정작 닮아야 할 대목에서 두 나라 간에 거리가 있다는 거다. 법과 규정을 존중하고 엄격하게 지키는 문제 말이다. 우선 공직자의 엄격한 윤리규정이 그렇다. 미 의회는 50달러 이상의 선물을 금지한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런 규정이 여당 실세 의원에게도 가차없이 적용됐다. 20선으로 막강한 위치에 있었던 찰스 랭글 의원이 카리브해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통신회사가 비용을 댄 것으로 밝혀져 최근 하원 세입위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의회 윤리위가 이런 식으로 조사 중인 사건이 7건이나 남았다.



의회만이 아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선 주지사가 주정부 항공기를 개인 행사에 이용했다가 패가망신했다. 뉴욕주 한 여성 의원은 남성 보좌관에게 저질 표현을 했다고 주의회 윤리위가 조사에 나서자 의원직을 던졌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할 만한 일들에도 엄격한 잣대를 자체적으로 들이댄다. 문제가 되면 당사자는 서슬 퍼런 결정에 따른다. 그러니 미국 검찰이 정치인을 오라 가라 하는 일은 드물다. 윤리 규정이 강하고 윤리위 제소도 있지만 서로서로 보살피는 우리 국회나 지방의회 윤리위와는 다르다.



의회 운영 방식도 마찬가지다. 건보 논란이 국론 분열까지 갔지만 다수결엔 절대 복종이다. 공화당은 전원 반대 속에도 정해진 입법 절차를 존중했다. 국회 공전이나 육박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종시로 다툰 2월 임시국회가 끝나자 이달엔 여야 의원들의 외국행이 러시다. 국회가 앞으론 사소한 문제부터 윤리 규정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어떨까. 미국 정치를 보면, 어렵고 복잡한 세종시 문제도 결국 법을 엄격하게 지킬 때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게다가 법과 규정은 바로 국회가 만든 것 아닌가.



최상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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