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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본 정부는 왕실 보관 조선보물 속히 반환하라

중앙일보 2010.03.25 00:35 종합 34면 지면보기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채색된 화려하고도 섬세한 『명성황후 국장(國葬)도감의궤』. 조선의 대표적인 기록유산으로 꼽히는 왕실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귀중한 문화재다. 고려·조선시대에 임금이 학식 높은 신하로부터 강의를 들을 때 교재로 쓰인 『통전(通典)』은 또 어떤가. 고려·조선 두 왕실을 거쳐 내려온 극히 희귀한 자료다. 『왕세자책례도감의궤』의 해지고 낡은 겉표지에서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모습까지 연상돼 가슴이 아프다. 값을 매기기 어려운 이런 자료 639종 4678책이 일본 왕실도서관인 궁내청 서릉부에서 잠자고 있다. 어제 본지를 통해 생생한 사진들이 공개되었다. 당연히 우리 품으로 되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누구보다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나서서 반환 문제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두 마무리되었다는 말만 되풀이할 사안이 아니다. 6차 한·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2년 우리 정부가 당시 파악된 4479점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지만 겨우 1432점을 돌려받았을 뿐이었다. 우리 측은 『왕실의궤』나 『통전』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명성황후 국장의궤 등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70여 종의 의궤들은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왕실에 ‘기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한국해외전적조사연구회·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등 국내 민간단체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국권을 강탈한 상황에서 남의 귀중한 문화재를 자기들끼리 ‘기증’했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가. 재작년 서울에서 열린 유네스코 산하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 위원회(ICPRCP)’ 전문가회의에서도 ‘제국주의 식민 침탈 당시 불법적으로 약탈당한 문화재는 원소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요지의 ‘서울 선언’이 채택됐다. 한·일 강제합병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일본 정부가 양식 있는 결단을 내려주길 촉구한다.



우리 측도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일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반환을 성사시킬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네스코의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은 1970년 이후의 도굴·불법반출 문화재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정현 의원이 주도해 지난달 국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일본 소장 조선왕조 의궤 반환 촉구 결의안’이 다른 문화재를 놔두고 일단 의궤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환수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2006년 일본 도쿄대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史庫本)을 서울대에 되돌려준 좋은 선례가 있다. 학계와 불교계, 정치권이 힘을 모아 일본 측을 설득한 덕분이었다. 오대산본 역시 1913년 조선총독이 일본에 반출한 것이었다.



나라 밖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는 문화재청이 파악한 것만도 10만8000점 가까이 된다. 당장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도 걸려 있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일본이 스스로 알아서 조치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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